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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Mar 18. 2022

꼭 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마도 괜찮을 겁니다.








#1

 약 3주 전, 9개월의 휴식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를 했습니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손에 꼽을 만한 힘든 일을 겪고나서, 스님처럼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통달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 큰 오산이었습니다.


 힘들게 일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그럴 때가 있지" 라고 쉽게 말했던 저를 혼내주고 싶군요. 이제는 나를 지키는 삶을 살면서 회사에 충성충성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던 9개월이 9시간 만에 사라졌거든요.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명상, 상담을 통해서 그리고 심리학, 뇌과학, 철학 책들을 읽고 생각하면서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알아차림'이라는 것이 있겠네요.


내가 지금 또 같은 감정 패턴에 빠져있구나




#2

 예전보다 빠르게 알아차렸죠. 하지만 똑같이 힘듭니다. 알아차리기만 했을 뿐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거든요. 일단 그래도 계속 생각해봤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요.  여전히 나는 이 공식에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해야 한다.
해 내야 한다.



 당연히 못 할 수도 있는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에게 실망을 한다거나, 그 때문에 내가 무능력하게 비춰질까 두려움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은 아마도,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같이 비슷하게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회사의 분위기라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어필하고,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를 증명하며, 내 자신을 갈아 넣는 것. 그것이 마치 정답인것처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성취에 목이 말라 있습니다. 끝없는 갈증. 그것은 바로 타인의 인정입니다. 평가를 못받으면 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가 세상이 끝난 듯이 우는 것처럼.



#3

 다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Q1. 내가 만약 못 해낸다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A1. 내가 잘 할 것이라 생각하고 데려왔는데 실망할 것 같아서 두렵다


Q2. 회사에서 동료들이나 상사가 나에게 실망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A2.  내가 남들에게 잘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고 나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로인해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된 느낌이 괴로울 것 같다.


Q3. 그것이 나의 인생에 중요한 것일까? 그것이 나일까?

A3. 아니. 나는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내가 모자라 보인다면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의 시선이 내 자체는 아니다.


Q4.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할까?

A4.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해보자.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는 그들의 몫이다 (어렵지만). 못해도 괜찮다. 욕먹어도 괜찮다. 조금만 더 뻔뻔해지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은 내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 자체가 내가 아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나답게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4


나는 괜찮다.

일을 잘 못해도 괜찮다.

나는 아마 괜찮을 것이다.




#5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잠잠해지다가, 다시 감정의 패턴에 빠져 힘들어하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책에서 인용되던 이 시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가 떠오르더군요.  


 똑같은 길을 가고, 똑같이 그 구멍이 있는 것을 봤지만, 자꾸만 빠지고야 마는 그 구멍. 저는 지금 몇 번째 빠진 구멍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 구멍의 둘레로 돌아서 가는 것을 지나 다른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Autobiography in Five Short Chapters>

- Portia Nelson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보도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보도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자리에 또다시 빠진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보도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보도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p.s.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네요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



https://blog.naver.com/arooncookie/22267018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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