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 아님을 간절하게 찾고 싶었던
#1
내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같은 이야기 일지라도 내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귀찮게 굴었다.
몇번이라도 똑같은 대답이라도
하지만 영혼없이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영 시원치 않았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기를 바랐다.
내 탓이 아니라는 심리학적인 과학적인 근거
그런 객관적인 근거가 아니어도
내 탓이 아니라는 그말을 듣지 못하면 그날 하루의 잠을 청하지 못했다.
#2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들은 나를 어리고 젊을 때 부터 봐왔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근거로 나를 응원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었다.
대학생때부터 동생을 생각하고 집안을 보필해왔고
그로인해 서운함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그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회적인 구조와 가난이 야기한 일
나는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있고, 동생도 성인이 된지 꽤 시간이 지났고
아이가 셋인 나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원 가족을 보필해왔고
그러므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모르겠다. 그랬다 하더라도
내가 좀더 넓은 마음을 가진 언니였다면
먼저 손내밀지 않았을까?
내가 희생한 바를 생색내기 보다는 쿨하게 감싸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가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속이 좁음으로 인해서 이렇게 사람이 죽을 수가 있다는 것에
정말 크게 놀라고 슬프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마음이 넓은 언니가 될 수 없었던 걸까?
모르겠다. 혹자는
너는 왜 너를 만난 가족을 원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너를 원망하는 가족에게 미안해만 하니?
라며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겠다.
어찌보면 내 탓으로 돌려야 마음이 편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3
"어쨌든 제 탓이잖아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에게 그렇게 화내면 안되잖아요"
내가 말했다.
"모르셨잖아요?"
상담사가 말했다.
"모르고 사람을 차로 쳤다고 해서 그게 죄가 아닐까요? 제 잘못이 맞는거같아요"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그것으로 죽었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때문에 죽은게 아니잖아요. 왜 99의 사람들이 잘못한거에 1을 더했다해서
본인이 100의 잘못을 가져가려하세요?"
상담사가 말했다.
"제가 1을 더하지 않았으면, 어쩌면 살았을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말했다.
#4
동생이 죽은 뒤,
나는 동생의 죽음을 찾아 헤맸다.
생각보다 빨리 여러가지 이유를 알아냈다.
남편이 "너는 국정원에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농담을 던질 정도로
상당히 빠른시간 안에 동생이 힘들었던 이유들, 죽음을 생각했던 원인들에 대해 파악했다.
그 어디에도 나는 있지 않았다.
나는 이미 몇년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자매였고
그로인해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기 떄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 속좁음이 동생의 아픔과 이상함을 지나쳤기 때문에
그것이 모두 내 죄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신호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다 생각해서 분명 연락을 하려 했다.
하지만 곧다시 무시하고 짜증을 낼 것이라 생각하여 멈췄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5
자살 유가족들이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이유를 몰라서 답답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제까지도 멀쩡해보이던 사람이
왜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동생은 세상 행복해보였다.
나와는 달리 좀더 과감하게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회사의 동료들도
항상 베시시 웃으며, 힘든 얘기를 일절 안했기에
신선같이 힘듦에 통달한 사람 같았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 다행인걸까
#6
네가 신도 아닌데 그것을 다 알 수는 없어
그런 것 까지 다 너의 책임이라 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야
너도 너의 삶이 있고, 동생도 동생의 삶이 있고
그 사람의 모든 일과 감정을 네가 책임질 수는 없어
너는 너의 가족과 동생을 위해
너의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했어.
나라도 그렇게 못해
너의 마음이 좁은 것이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나의 지인들, 친구들이 내게 해줬던 말이다.
#7
지금 내가 그 '탓'에서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냥 다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전에 썼던 '만약'이라는 글처럼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일 수도 있다.
만약에 내가 동생의 죽음에 보탬이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고 해도
나는 그 일을 돌이킬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다.
내 탓이어도, 내 탓이 아니라 해도
나는 내가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
돌이킬 수 없다.
그저 나중에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허지웅 작가님의 '불행의 인과관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