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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Nov 06. 2022

지나가는 바람에도 나는 울었다.

전하지 못한 말. 앞으로도 전할 수 없는 말

Photo by Timothy Eberly on Unsplash



#1

 몇 년 전, 딱 이맘때 쯤이었습니다. 코끝시린 바람이 스쳐지나가지만, 햇살은 따사로웠고 하늘은 높았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출근 길이었습니다. 날씨가 너무도 좋은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무심코 흘러나오는 슬픈 음악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뭔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왔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요새 딱히 안 좋은 일도, 감정이 상할 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왜이렇게 슬프지? 무엇일까. 하는 찰나 달력을 보니, 아버지 기일이 있는 주였습니다. 10년도 훌쩍 넘어서 이제는 무뎌졌다 생각했는데, 기일 이라는 것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납골당 가서 인사 한번 드리고 오는 것 뿐이엇는데.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고, 죽음이 지나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슬프다기 보다는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고 지금의 내 새로운 가족들, 나의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오감이 나도 모르게 나의 무의식을 그렇게 건드려 나의 감정을 그때의 그 순간으로 순식간에 데려간 것입니다.


 몰랐습니다. 아버지와 관련된 그 무엇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할 수는 있다는 생각은 줄곧 해왔지만, 그 날의 날씨, 온도, 기온, 빛깔 그런 감각들이 나를 그날의 감정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트라우마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2

 동생이 죽고 나서는 트라우마가 좀 더 심했습니다. 경찰서, 호텔만 봐도 무서웠습니다. 가끔 호텔에 묵을 때면 수건 걸이를 보며 눈을 질끈 감을 때도 있었습니다. 올가미 같은 줄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문기사도,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젊은 사람들의 사연도 모두 다 동생의 죽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그날의 나로 돌아갔습니다. 동생의 시신을 확인했던 날. 경찰서에 가서 확인을 받던 날. 장례식. 그 전에 스쳐지나갔던 놓친 신호들. 




#3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픈 것은.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떠한 마음도 말도 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이런 말들. 시시콜콜한 나의 이야기들. 전하고 싶었는데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들. 그런데 앞으로도 전할 수 없는 안타까움. 이런 아픔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마음이 저리고 아리고 슬프고 무겁습니다.


 내가 그날 연락했더라면, 내가 붙잡았다면. 살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외롭게 세상과 단절하고 죽어가는 순간에, 잘 지내시냐 문자 하나 보냈더라면. 동생에게 마음을 넓게 품고 문자로 화내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if. if. if 끊없는 반복의 굴레와 자책으로 마음이 어지럽고 둘데 없어집니다.




#4

 대학을 입학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아버지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났습니다. 


 아빠, 내가 이 대학에 드디어 합격했어요. 좋은 회사에 들어갔어요. 좋은 남편을 만났어요. 아빠처럼 산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제 아이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스스로 학교를 끝까지 다녀서 회사에 들어가 가족들을 보살피게 되었어요. 저도 가족을 꾸리고 엄마가 되었어요. 저의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잘 자라고 있어요.


 이런 말들을 무척이나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면, 죽었을 때 아빠와 동생을 만나 못다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지, 드라마 때문인지 몇 년 전에는 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꿨습니다. 너무 생생하고 신기해서 기록을 해뒀죠. 아버지가 다른 세계로 가시기 전에 잠시 만나 테이블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꿈이었습니다. 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10분이 주어졌을까요. 


"하고픈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10분 이라니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요? 내가 대학가는 것, 결혼하는 것만 보고 가셨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거예요."


울면서 꿈속에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 갔더라도, 너는 늘 그렇게 조금만 더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거야. 대학을 가면, 회사를 가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크면. 계속 그만큼 슬펐을 거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아빠는 위와 같은 말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습니다.




#5

 이번 주는 아버지의 기일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3년 동안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펑펑 울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마음에 묻고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예전에 납골당에 갔을 때, 옆에 있는 분의 납골함에 합격 증서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그래습니다. 항상 어떤 것을 해낼 때,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의 기쁜 일, 큰 변화가 생겼을 때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 하지만 전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전하지 못할 아픔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이 생이 다하는 날엔 꼭 한번 만나 못다한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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