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다 Feb 03. 2023

미워하는 마음은 연애와 한끗차이

내 마음의 초점을 다시 나에게로 가져오기

사진: Unsplash의Dan DeAlmeida



#1

 오랫동안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살면서 늘 있었던 것 같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 미운 감정 때문에 그 사람을 하루종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까운 나의 시간과 삶에, 그 사람이 너무 미워서 그 사람 생각만 골똘히 몰두하는 나. 어떻게 보면 연애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하루종일 상상하던 것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냐 싶었다. 그것이 설렘을 주고, 고통을 주고의 차이일 뿐 하루종일 그 사람에 대해 마음을 빼앗겨 생각하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차 싶었다. 나를 잃는 순간들이다. 그 싫은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미운 이유에 대해 낱낱이 곰씹고, 어떻게 하면 본떼를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왜 바보같이 당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가면을 벗겨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까. 그렇게 한도 끝도 없이 눈을 떠서 다시 잠이 들 때 까지 찰나의 시간이 될 때마다 그 기분나쁨을 곰씹었다.


 아이들이 웃으며 다가와도 그 사람의 생각에 기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바보같은 일일까.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함께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 생각으로 내 마음과 일상이 차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미운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나에게로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과 의도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알아차리고 다시 나의 기분, 나의 밝은 미래, 나의 가족, 나 자신의 마음에 초점을 가져오도록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에 대한 시각도 점점 바뀌게 되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나에게 무척 거슬리는 나의 내면의 무언가를 긁고 건드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백색 소음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동차의 경적 소음, 카페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처럼 모호하게 울리며 들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거다.


 유쾌하고 즐겁지는 않지만, 그냥 소음일 뿐이구나. 그냥 내 일상의 배경,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그런 지나가는 소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반복했다. '싫다'라는 마음의 신호가 올때, 그 사람에게 너무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한 뒤, 그런 것 같으면 나의 다른 문제들이나, 내가 신경을 써서 더 잘 되고 싶은 것들, 나의 좋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연습을.


 


#2

 꽤 오랜 시간동안 누군가를 미워했다. 사람만 바뀔 뿐이었지 그건 지속되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은 늘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미워하는 마음을 초월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뜨거운 석탄을 내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부처의 말처럼, 내가 미워하는 마음은 그 미워하는 사람을 해하기 보다 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역으로 코끼리가 자꾸만 생각나는 것처럼 미운 사람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퍼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와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더욱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작년 초에, '누군가 나를 싫어해도, 이상하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고, 그대로 괜찮다'라고 계속 해서 내 마음의 의도를 가져오는 연습을 아침 출근길마다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미운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의 의도를 그렇게 가져오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점점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미워하는 마음이 들때 ->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되는가? -> 그런 시간을 지속하고 싶은가? -> 나의 삶으로 다시 초점을 가져오자 -> 나는 무엇을 어떻게 이루는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이 소중한가


 


#3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미운 마음이 줄어든다. 미운 사람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결국 미워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과 한끗차이 같다. 주고 받는 것이 다를 뿐, 집중하게 되는 것, 스스로 상상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는 똑같다.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다.


 미운 사람이 점점 배경으로 묻힌다. 이해를 해본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1+1=2 와 같은 관계가 있기 보다는, 그냥 상황에 따라, 본인의 주변 환경에 따른 여러가지 변수들이 합쳐진 와중에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 뿐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래, 나에게 어떠한 해를 가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생존의 본능을 택한 것 뿐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생존하기 위한 방식이었을 뿐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미운 사람을 굳이 좋아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을 다 차지하게 두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그런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미워하거나, 이상하다 생각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