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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07. 2024

야망 없는 알맹이들이 모이면 무엇이 바뀔까.

기후위기의 시대, 그리고 연대 (1)

아이가 태어나고, 이 아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면서 환경의 변화에 좀 더 민감해졌다. 그전에도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이제 더 이상 에너지를 마음껏 쓰고 지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만들면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 소비에 젖어 살아가고 있던 내가 지금 당장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내가 혼자 노력을 한다고 뭐가 바뀔까 싶고, 조금 느슨해지면 나도 모르게 내 편리를 위해 또 쓰레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가이드를 제안하는 사람, 공간이 있다. 바로 금자님, 그리고 알맹상점이다.

 

금자님은 덕질을 하는 덕후다. 쓰레기 덕질을 하는 쓰레기 덕후. 스스로 늘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언제나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쓰레기가 덜 발생하도록, 발생한 쓰레기는 제대로 재활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공부하고 알아내고 스스로 해보고 사람들에게 제안을 한다. 그녀는 오랜 기간 몸 담았던 환경 단체를 나와 쓰레기 덕질을 위한 해외 탐방을 다녀왔다. 여러 나라들이 어떻게 쓰레기를 줄이고 재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시민들이 마을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경험했다.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그녀는 동네 시장에서 작은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함께 실험했던 이웃들과 작은 가게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의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이  그 이름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알맹상점에 가면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제품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용기를 가져가면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그 안에 리필해서 담아 올 수 있다. 상점에 들어가면 카운터 앞에는 기증을 받아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쇼핑백과 빈 병들이 쌓여 있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대나무 칫솔, 스텐용품, 비누형태의 샴푸와 린스, 고체치약, 텀블러, 삼베수세미, 소창으로 만든 스왑(화장솜 대용), 천 마스크 등이 촘촘히 진열되어 있다. 그 맞은편 벽에는 큰 기름통 같은 통 안에 샴푸, 세탁세제, 주방세제, 스킨/로션 등 화장품 등이 채워져 있는데, 집에서 빈 용기를 가져가 채우고 무게를 재어 구매를 할 수 있다.

 

좀 더 안쪽으로 가면 마치 쓰레기 분리수거장 같은 공간이 있다. 우리가 보통 재활용 쓰레기들을 분리배출을 해도 실제 재활용이 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 폐플라스틱의 경우는 54%에 불과하다(폐기물 처리현황_생활폐기물, 2020). 섞여 있고, 불순물이 들어간 재질은 재활용이 되지 않고 다 소각이나 매립이 되어 다시 환경을 오염시키게 된다. 테트라팩(멸균 우유팩)이나 페트병의 뚜껑 등이 대표적이다. 알맹상점은 이러한 제품을 모아 실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재활용 업체로 전달하여 실제 재사용이 100%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알맹상점에서는 자신들이 수거하고 있는 쓰레기 항목을 늘 온라인에 올려둔다. 사람들은 이러한 쓰레기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주기적으로 알맹상점에 가져온다. 내가 만든 쓰레기가 잘 재활용이 되어 다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얼핏 보면 도떼기시장 같고 불편한 과정들을 거쳐야 하지만 알맹상점에는 늘 사람들이 오고 간다. 알맹상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 삶이 조금이라도 환경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실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는다. 나에게도 그곳은 환경에 덜 영향이 가는 방식의 소비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구매할 때는 물론이고, 쓰레기와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관련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서 궁금할 때는 알맹러들(알맹상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방에 묻는다. 더불어 알맹상점은 나의 아이에게 환경보호와 기후위기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이현이는 가끔 이곳에 와서 자신이 쓸 무지개 대나무 칫솔을 고르고, 주방세제를 리필하고, 페트병 뚜껑들을 녹여 키링을 만들기도 한다.


알맹상점을 알게 되고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나도 우리 동네에 이런 제로웨이스트샵을 만들고 싶다”였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는데, 실제 많았나 보다.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에 대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아지자 알맹상점은 매 월 관련한 워크숍을 열고 있다. 실제 운영에 뭐가 필요한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어떤 법과 제도를 알아야 하는지, 알맹상점을 통해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루트 등 실제적인 정보들을 모두 오픈하고 공유한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알맹상점을 비롯한 제로웨이스트 샵이 300개 넘게 운영이 되고 있다. 언젠가 ‘알맹상점‘을 프랜차이즈처럼 운영하면 어떠냐는 나의 부족한 물음에 금자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야망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떼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알맹상점이 전국을 커버해야 한다는 야망도 없어요. 우리가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고 조금 큰 일을 벌일 때는 사람들에게 함께하자고 이야기할 뿐이에요. 어딘가에 알맹상점 같은 곳들이 계속 생겨나고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화를 접하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변화를 함께 할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죠.“ (약간의 내 머릿속 워싱이 있겠지만, 이 내용이었다. 머리에 박힌 단어는 ‘야망 없는 사람들’)


이렇게 보면 알맹상점이 작은 개인들의 일상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곳은 공격기지의 역할도 한다. 어느 날 금자님이 어택(attack)을 한다고 했다. “아니 소비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재활용을 하고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서 다양한 고민을 하면 뭐해요. 기업들이 재활용하기 힘든 제품을 만드는데.. 이 제품들을 다 모아서 기업한테 가져가서 ‘너네 회사가 만든 이 제품의 용기들 다시 너네가 가져가서 재활용해라. 못할 거 같으면 재활용이 쉽게 다시 만들어라’ 하고 요구하는 거예요. 소비자로서. 그리고 정부에도 기업의 이런 행태에 대한 규제를 하라고 요구하는 거죠. 시민으로서” 이렇게 한다고 기업과 정부가 움직일까 싶었지만, 금자님은 다양한 어택을 시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화장품 어택‘을 하면서 재활용이 안 되는 예쁜 화장품 용기들을 모아 뷰티제품 회사들 앞 거리에 다 부어버렸다. 전국 제로웨이스트샵에 모인 용기들은 몇십 톤에 달했다. 이후 많은 화장품 회사들이 재활용이 쉬운 용기를 만드는데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화장품 용기에도 재활용 분리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브리타 어택‘을 하면서는 재활용이 안 되는 정수기 필터를 다 모았다. 이후 브리타는 고객들의 정수기 필터를 직접 회수하고 재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알맹상점에서도 브리타 필터의 회수처로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스팸 어택‘을 하면서 스팸 상단에 있는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다 모아 보냈다. 그 이후 스팸에서는 뚜껑 없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금자님과 알맹상점이 ’나의 소비가 우리의 삶의 돌볼 수 있기를 바라는‘ 소비자들을 모으고, 제안하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변화에 조금이나마 함께 하게 되고, 삶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나에겐 기업에서 만들어진 대로, 기업에서 홍보하는 것만 보고 구매하고 사용하는 무기력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소비자로서의 에너지가 탑재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불편을 감수하고 환경에 이로운 생활을 해보려는 이웃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옆의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제안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마도 알맹상점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고, 작은 변화를 함께 만들었다는 연대감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되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알맹상점과 금자님은 이 연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혼자 할 것도 함께 하도록 만들어 내고, 같은 목적을 가진 곳들을 계속 발견하고 연결해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연결이 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기까지의 시행착오와 엄청난 노력이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연결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은 사실 살짝 힘을 뺀 그래서 누구나 쉽게 드나들고 참여하는 개방성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며 만들어 내는 에너지, 부담스럽지 않은 제안과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즐거운 메시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기꺼이 다른 이가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여유. 물론 ‘환경’이라는 주제가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사회문제이지만, 주제를 떠나서도 알맹의 다양한 실험과 그것을 통해 구축해 온 연대의 방법은 연대와 협력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가 크다.


[나쁜 비건은 어디든 가지] 책에서 래퍼 슬릭은 ’연대‘란 ’사람인(人)‘ 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서로 등을 맞대어 기대고 있는 사람인(人). 이전의 연대는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연대는 정말 사람인(人)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등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있다는 믿음. 우리는 각자가 보이는 곳에서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 내가 모든 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믿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 알맹상점과 금자님이 하는 활동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위해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 내가 제안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응답을 할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결국 사람들이 연대에 동참하게 되는 첫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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