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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Dec 15. 2023

농부의 딸

일요일 밤 전화를 받자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야. 쌀 사지 마라. 내일 택배로 쌀 보낼 텐데, 혹시 쌀 살까 봐 전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쌀이 거의 떨어져 다음날 사려던 참이라 엄마의 정확한 타이밍이 반가웠다. 하루 정도는 버틸 양이돼서 화요일에 택배 받으면 그 쌀로 밥 지어야지 생각하고 화요일 오전에 택배 문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늦은 오후가 되어가도록 택배가 오지 않아 엄마께 택배 확인 전화를 했다.


"응~~ 월요일 오전에 아빠가 바로 붙였는데. 요즘 쌀을 많이 보내서 택배가 엄청 밀려 있다고는 하더라. 어떡하냐?"


어떡하긴요. 기다리면 되죠. 일단 당장 먹을 쌀 2kg를 사 와 밥을 짓고 택배는 여유롭게 기다렸다. 목요일이 되어서야 현관 앞에 20kg 쌀가마가 놓였다. 





농부의 삶은 참 건강하고 행복해. 그리고 무엇보다 해롭지 않고, 아니 오히려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이지. 숙부님은 그 애가 법조인 교육을 받고, 흥미를 갖게 되어 판사가 되면 어떨까 하셨어. 하지만 그애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데다,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땅을 일구는 일이 인간의 죄악을 목도하고 가끔은 공범자가 되는 일보다는 훨씬 훌륭한 일이잖아. 

p.82 <프랑켄슈타인> 문학동네


요즘은 보기 드문 정미소 쌀가마. 매년 받는 이 쌀가마가 '돈'가마까지는 아닐지라도 올해는 유독 크고 무거워 보인다. 마침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영어 북클럽에서 읽고 있었는데 책 속에서 갓 읽은 위 문단이 쌀가마 도착 시기와 딱 맞아서 더욱 특별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잉겔슈타트 대학에서 공부하느라 떨어져 지낼 때, 그의 집 제네바에서 엘리자베스가 가족 이야기를 편지로 전하는 부분이다. 빅터의 동생 에르네스트는 스위스 용병이 되기를 원하고, 아버지는 법을 공부하여 판사가 되기를 원했고, 엘리자베스는 농부를 좋아한다며 농부의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편지에 적었다.


"농부의 삶은 참 건강하고 행복해.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이지."

이 부분을 읽으니, 내가 어려서 보았던 농부의 삶을 기억 속에서 헤집게 되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이른 여름의 아침. 밖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잠을 깨기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어느새 논에 다녀오신 할아버지. 밤에 비가 너무 내려서 동이 트자마자 장화, 우비를 챙겨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물을 보러 다녀오셨다. 논에 물에 넘치지 않게 삽으로 물꼬를 트고 오신 듯했다. 모내기를 하는 봄이 지나고 파릇파릇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여름의 논은 특히 변수가 많다. 비가 많지도 적지도 않게 충분히 와야 하고 태풍도 잘 피해 가야 가을에 만족할만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논이 넓게 펼쳐진 농촌의 시골은 밤에는 사람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어둡고 고요하지만, 해가 뜨기 시작하면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풍경 색이 다채로웠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짧은 벼구르터기만 남은 논에 얼음이 얼어 침묵하며 가만있는 듯 하지만, 바람이 온화해지고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초록 싹이 트고 들가에 노란 개나리빛, 산에 분홍 진달래빛이 퍼지는 봄이 되면 농번기에 접어든다. 경운기로 모판을 실어 나르고 못줄 아래 일렬로 자리 맞춰 모내기하는 일로 1년 농사가 시작된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새참 심부름을 하곤 했다. 자전거 뒷자리에는 엄마가 묶어 준 새참 바구니가 있고, 한 손에는 막걸리가 담긴 주전자를 든 채 페달을 굴려 논으로 향한다. 챙 큰 모자, 긴팔 소매, 목에 수건을 두른 어르신들이 '새참 온다~~' 나를 반기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은 친구들 집에 비해 농사일이 적은 편이었고, 엄마는 딸에게 농사일을 가능한 안 시키려고 하셨다. 그래도 손이 부족한 대로 아빠가 거름 가득 담긴 리어카를 끄실때면 첫째인 내가 뒤에서 밀어 힘을 보탰고, 모내기 후 빈 틈에 모를 채우는 가종자를 부모님과 하곤 했다. 그리고 새참은 자전거 라이더로서 여러 번 했지 ^^ 


낫질은 고등학생 때 한번 해 봤다. 그해 태풍 피해가 커서 군내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면 추수가 얼마 남지 않은 논 곳곳에 벼가 쓰러져 있었다. 학교에서 우리 학년이 단체로 논으로 나갔다. 논에 들어가 쓰러진 벼를 낫으로 모아 베었다. 학교 수업 빼먹는 기쁨이 컸는지, 우중충한 날씨에 논에 들어가 낫질하는 힘듦이 컸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 해 보는 낫질에 상당히 긴장했다. 


요즘도 추석에 내려가면 수확 전의 논을 보며 '황금 들판'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수확 직전 물을 다 빼서 말리고 있는 논에, 작은 벼 이삭이 영글영글 매달려 있는 모습은 내가 농사 짓은 것도 아닌데 마음을 꽉 채운다. '올해는 쓰러진 벼 없이 잘 자랐구나.'  

작년 추석에 내려가서 본 논의 모습


농사도 이제는 기계화, 대량화되어 크고 비싼 농기계를 구입한 전문 농업인이 대신한다. 아빠도 이제 농사를 맡기고 가을이 되면 쌀을 받으시는데, 어렸을 때는 가을이 가장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노랑, 빨간 단풍이 지는 틈 사이로 '황금 들판'에서 추수되고 탈곡된 벼가 인적 드문 시골의 길가에 말려진다. 매일 아침 검정 천 위에 벼이삭을 고무래로 쭉 펴서 말리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다시 벼를 담고, 다음날 반복해서 말린다. 벼뿐만이 아니다. 파란 포대에 빨간 고추도 널려 있고, 그 위로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한 해의 농사가 마무리되면 우리 가족의 식량이 되고, 서울에 사시는 고모들, 작은 아빠의 식량으로도 보내졌다. 농부가 부지런히 움직임에 따라 정직하게 수확되는 일. 그러나 열심히 했음에도 자연 앞에 겸손하게 망칠 수도 있는 일. 가족뿐만 아니라 먼 친척까지 먹여주는 일. 1년의 농사를 위해 몸은 부지런히 그러나 마음은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농부의 시간이 우리 삶에 득이 되는 것임은 분명하다. 


대부분 농사를 업으로 했던 시골 마을에서는 큰 빈부의 차를 느끼지 못했고, 직업에도 큰 차이가 없어 책의 문단처럼 판사나 농부의 고민도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다채로운 풍경의 색을 뒤로하고, 밤의 화려한 불빛을 쫓는 불나방처럼 서울로 올라왔고, 남쪽에서 위로 올라올수록 보이지 않는 계급차는 크게 느껴졌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만난 지인들의 물려받은 부에 놀라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지만, 부모가 된 나랑 남편은 이야기한다. 큰 재산을 물려받진 않았지만, 추수가 끝나면 객지의 자식들에게 쌀가마 보내느라 밀려있는 택배만큼 1년의 건강한 삶을 매년 선물로 물려받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다시 연말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할 힘을 저장한다. 차이의 무게에 눌려 작아질 때 그걸 흩어 버릴 힘을 주는 무거운 쌀가마가 그래서 유독 반갑고 감사하다. 


추수 맞친 겨울의 논. 단단히 견뎌서 내년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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