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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과 짜증 사이 그 어딘가

29개월 : 잘못된 것은 너의 행동일까, 나의 마음일까

by 여울맘

요새 아기는 맞는 말을 무척이나 잘하고 제법 어른과 대화가 잘 통한다. 이 때문에 엄마인 나는 아기와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섣부른 기대를 하기도 한다. 어느새 제법 다 큰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여전히 아가일 수밖에 없는 29개월, 엄마의 훈육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자주 혼란스럽다.


지난주 나의 아기는 갑작스러운 일탈을 연달아 벌이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육아담에서 흔히 등장하는 에피소드이지만 그동안 아기가 너무나 온순하게 자라준 탓인지 아가의 첫 일탈은 그 자체로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첫 일탈은 미역국을 먹던 저녁에 발생했다. 아기가 갑자기 본인의 미역국그릇을 쏟아버리며 음식을 바닥에 보란 듯이 던져버리는 모습에 이건 훈육을 해야겠다 싶은 확신이 들었다. 평소 투정을 받아주기만 하던 외할머니도 이 날 만큼은 나와한 편이 되어 주었다. 냉랭해진 집 안 공기가 두려웠던 것인지, 아기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안아달라고 떼를 쓰고 울기만 했고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강하게 아기를 나무랐다.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야지. 음식을 던지는 건 나쁜 짓이야"라고 반복한 지 삼십 분은 지났을까. 서럽게 울던 아기는 꺽꺽 대며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한 번 더 반성을 재촉하자 "'잘못했습니다' 했잖아, 했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기도 했다. 본인이 엄마와 할머니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이 아기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훈육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나 머리로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유난히 ‘훈육’이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 엄격해진다. 34년을 산 나도 여전히 자기 조절을 익히며 살아가고 있는데, 30개월도 채 안 산 아기에게는 얼마만큼 엄격해져야 하는 걸까. 겉으로 제법 대화가 통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가끔 내가 혼내고 있는 사람이 아직 전두엽을 만들어가는 미숙한 아기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가끔은 솔직히 내 컨디션 난조에 따른 짜증을 훈육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종일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대며 발을 동동대고 나면 집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긴장이 확 풀려 녹초가 된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쌩쌩한 우리 아기. 재잘재잘 질문도 많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한 번씩 돼 말하는 나의 앵무새는 스크린 너머로 볼 때는 더없이 깜찍하지만, 그 에너지를 온몸의 감각으로 직접 받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책이나 영상 속에서 우아하게 배운 육아지식들은 아이가 고주파로 떼를 쓰고, 녹초가 된 몸에 매달리는 순간 모두 잊힌다. 잠들기 전 책을 한 권 더 읽어달라는 아기의 요구를 모른척하고 이제 자야 한다고 단호하게 굴 때에는 이게 아기의 수면교육인지 나의 수면욕심인지 정말 헷갈린다.


이제 하반기 유학을 떠나기 전 이런저런 준비를 위해 곧 휴직을 할 예정이다.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길 테니 아기의 올바른 훈육을 위해 이모저모 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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