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 점점 어려워지는 아기의 질문들
말과 생각이 트인 30개월의 아기는 저녁 아홉 시에 잠자리에 일찍 눕혀도 한 시간이 넘게 종알거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기 일쑤이다. 하지만 과감히, 무작정 휴직을 때려 버린 요즘의 나는 더 이상 조급하지가 않아서 온전히 아가와 알콩거린다. 잠들기 전 어두운 방 안에서 꺼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라고는 각자의 마음 속에서 꺼내지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나 매일 색다르고 재미나다. 누군가는 AI 챗봇에 고민을 털어놓고,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그 시간에 우리 아기는 나의 최고의 대화상대가 되어준다.
처음 키워보는 아기인 탓에 모든 아가가 이렇게 호기심이 많은 건지 우리 아기가 유난스러운 건지조차 모르겠지만, 요새 아기는 그야말로 '물음표 살인마'이다.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아빠를 쏙 빼닮아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아기의 호기심을 감당하기 위해 항상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한다. 요새 아기는 짝꿍과 관계의 개념을 배워가는 듯 한데, 그 질문이 가끔은 꽤나 철학적이다. 최근 잠자리에서의 대화도 매우 깜찍했다.
"엄마는 누구 딸이야?"
"엄마는 할머니 딸이야."
"엄마는 왜 할머니 딸이 되었어?"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고, 엄마가 여울이를 낳은거야. 그래서 엄마랑 딸이 된거야."
"아빠는 그럼 누구 딸이야?"
"아빠는 할머니 아들이야. 딸은 여자한테만 쓰는 거야."
"엄마 짝꿍은 누구야?"
"엄마 짝꿍은 아빠야."
"엄마는 왜 아빠 짝꿍이야?"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좋아서 서로 짝꿍하기로 했어."
"그럼 나는 짝꿍이 없네.. 나는 짝꿍이 없어서 토끼 짝꿍하는거야!"
"어린이집 친구 집에 짝꿍하고 싶은 친구 없어?"
"음, 나는 준우를 제일 사랑해. 그런데 준우가 장난칠 때는 안 좋아."
최근 경복궁에 갔을 때는 아가에게 얼렁뚱땅 대답을 해 준 이후에도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해 남편에게 조언을 구한 적도 있다. 귀족사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기에게 설명해주기가 어려웠다.
"여기는 누구 집이야?
"여기는 옛날 공주님, 왕자님이 살던 집이야."
"지금은 누구 살아?"
"지금은 공주님, 왕자님이 살지 않아."
"왜?"
"음.. 이제는 우리 모두 다 같이 공주님, 왕자님처럼 살기로 했어."
"왜? 그럼 공주님, 왕자님은 어디 갔어?"
아가의 물음표는 결국 아기가 탄탄하게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해줄 것이다. 최근 34살의 나를 불행하게 했던 건 지독하게도 순탄했던 학창시절이었다. 사회가 가치있다고 라벨 붙인 길을 따라간 덕분에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가치도 증명되고 있다고 착각해버렸다. 덕분에 학벌의 라벨을 떼고 한 판 붙게 된 사회 속에서 부서지는 과정이 못내 괴롭고 힘들었다. 지지대를 따라 위로 웃자라며 뽐내던 나무가, 지지대가 사라지자 하루 아침에 볼품 없이 휘어진 꼴이었다. 한 번도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이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그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며 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던 탓이다.
아가의 삶은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모두 의문을 품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것들이 명쾌하게 아기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아 주기를 소망한다. 지독하게 평범하고 순탄했던 엄마의 삶의 비극이 아기에게서는 부디 재현되지 않기를. 증명하고 치장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진짜 하루 하루가 기대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곁에서 누군가의 딸인 나도 늦지 않게 다시 뿌리를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