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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라는 호칭이 유난히 서러웠다

33개월: 어느새 아기는 어린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울 만큼 말이 늘었다

by 여울맘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신이 나서 이리저리 콧바람을 쐬러 쏘다니다 보니 아기 낮잠시간을 놓쳤다. 그 사이 아기는 캐리어 위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러나 용케도 꽤나 안정적으로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든 아기까지 캐리어에 싣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모습이 사람들 눈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웠나 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지던 수많은 말 가운데, “아줌마, 아기 깰라 살살 좀 끌어요~”라는 말에 잠시 발걸음을 주춤했다.


누가 봐도 지금의 내 행색은 아줌마가 맞기는 하다. 아기 짐까지 바리바리 챙겨 다니고, 시선은 항상 키 작은 아기로 향하는 탓에 머리도 금세 헝클어지고 만다. 내 입술 색 바를 시간에 아기 옷매무새를 하나라도 만져주다 보면 핑계 같기는 하지만 내 외관은 마냥 뒷전이 되어 버린다.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직이 되었고,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어떤 친구는 어느새 저녁뉴스를 책임지는 앵커가 되었다. 십오 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 마주 본 우리는 더 이상 친구사이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처음 들어본 “아줌마”라는 그 호칭이 너무나 지금의 내 모습과 잘 어울려서 씁쓸함이 몰려왔다.


이런 내 마음을 아기도 아는 걸까. 요새 어른들에 필적하는 말주변을 뽐내는 아기가 언젠가 우리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나 쑥쑥 자라는 게 싫어. 내가 자라면 엄마가 할머니가 되잖아.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나는 어떡해.."


아기의 말주변에 한 번 놀라고, 아기의 꽤나 논리적인 사고력에 두 번 놀랐다. 아기의 성장에 대한 그 모든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 후에야 나에게도 세월은 공평할 것이라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큰 4살 어린이를 둔 30대 중반 여성. 아줌마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펙이다. 모든 연령대에는 그를 지칭하는 호칭이 있을 뿐인 건데 왜 유난히 아줌마라는 호칭은 서러운 건지. 한 때 학생으로 불리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고,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아가씨로 불린다는 게 어색하던 시절도 지나간 지 한참이고, 이제 아줌마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내 지금의 모습이 멋진 커리어우먼이라면 덜 서러웠을까? 제3자가 나를 "아줌마"라고 규정지어졌던 것이 서러운 건지, 아니면 나부터도 스스로를 별 볼일 없이 늙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서러웠던 건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내 옆에서 제법 내 친구처럼 재잘거리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도 잠시다. 아줌마가 된 건 얼마든지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신 초라하지 않은 아줌마로 나이 먹어보자는 다짐을 한다. 아기를 하원시키러 갈 때 더 이상 맨 얼굴에 운동복 차림으로 가지 말자. 언제나 건강하고 생기 있는 모습을 유지해서 우리 아기에게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자. 아기가 나를 엄마로 당당히 소개할 수 있도록 내면뿐만 아니라 외관도 열과 성을 다해 가꾸어야겠다.


얼마 전부터 각성을 하고 1일 1팩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아기는 팩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기겁을 하고 울며 도망을 간다. 그 이상한 거 제발 떼라고 소리를 꽥 지르다가도 엄마가 이렇게 팩을 해야 할머니가 안 되는 거라고 설명해 주면 울먹이면서도 "엄마, 팩 해.."하고 허락을 해준다. 귀여운 것.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을 지독하게 겁내는 아기 덕에 엄마도 다시 한번 자극을 받는다. 이미 아줌마는 돌이킬 수 없다 쳐도 아기 눈에 내가 할머니로 보이는 그 시점만은 최대한 늦춰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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