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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나를 따라 하는 거야?

35개월: 엄마를 닮은 모방행동과 아빠를 닮은 질문의 무한굴레

by 여울맘

우리 아기만의 특징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아기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한 번씩 똑같이 따라 한다. 가끔 이걸 잘만 활용하면 육아가 꽤나 쉬워지기도 한다. 아기에게 양치질을 시키고 싶으면 내가 먼저 양치질을 시작하면 되고, 변기에 앉히고 싶으면 내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늉을 하면 된다. 얼마 전에는 미아방지용으로 손목시계형으로 에어태그를 채워주었더니 나와 똑같은 손목시계가 생겼다고 좋아한다. 팩트형 선쿠션을 사주었더니 나처럼 퍼프를 손에 끼고 제법 톡톡 두드리기도 한다.


요즘은 모방행동이 정말 심해져서 아가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한 번씩 되뇌어야 직성이 풀린다. 키우는 고양이가 저지레를 저질러 "야! 하지 마!"하고 소리쳤더니 옆에서 똑같이 "야! 하지 마!"하고 메아리가 들린다. 나쁜 말까지 따라 할까 싶어 그 어느 때보다 엄마는 고운 말 연습에 공을 들이게 된다. 아빠가 가끔 운전 중 내뱉는 험한 말에도 더욱 주의를 주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집 알림장에도 "여울이는 모방 행동이 강해요"라고 자주 적혀 있었다. 친구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그걸 따라 하면서 깔깔거리고 논다고 했다. 그래서 거칠게 노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가끔 위험한 장난까지 따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나를 닮은 것 같다. 나는 유독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같은 하루 안에서도 같이 노는 무리가 달라지면 내 말투도 성격도 금세 조금씩 달라졌다. 어렸을 때는 나는 줏대 없는 따라쟁이인가 싶어서 약점으로 여겼는데, 요새는 그 성격을 받아들이고 나니 좋은 친구들을 가려 만나며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아기도 내 성격을 닮은 것이라면 좋은 친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조금 더 크면 학군에도 꽤나 신경을 써 줘야 할 성격인 것 같다.


요새 아기의 또 다른 특징은 "질문 지옥". 이건 분명히 아빠를 닮았다. 나는 태생이 별로 호기심이 없는 편인데 아기는 아기 치고도 호기심이 유독 많다. 새로운 사물과 현상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 유난히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이치를 궁금해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엄마 지금 기분이 좋아 보이네? 왜 나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같은 식이다. 임신 시기부터 아기의 질문은 반가이 여기고 최대한 열심히 답해주겠다고 다짐했건만, 막상 이런 질문을 연속으로 열 번 넘게 마주하다 보면 금세 대답할 말이 똑 떨어져 버린다. 결국에는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로 얼버무려 버렸더니, 최근에는 아기도 우리가 뭔가 물어보면 "원래 그런 거지~"라고 대답하길래 그 말은 최대한 삼가기로 했다.


아무튼 요새 아기는 무진장 귀엽지만 하루 종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식이라서 정말 시끄럽고 분주하다. 이러고도 지치지 않고 매번 더 놀고 싶어 하며 보채는 체력이 신기할 정도이다. 어쩌면 지금이 무한한 인풋과 아웃풋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덜 지쳐가며 아기에게 양질의 인풋을 더해주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늙어가는 어미의 체력은 오후 2시만 지나도 동나 버린다. 이제는 낮잠 시간에 아기보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곤 한다. 오늘 오후에도 얼른 체력을 충전해서 아기에게 또 상냥하게 말을 건네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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