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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Nov 23. 2022

엄마와 아빠의 육아법

생후 2개월 : 아빠의 사랑 방식도 존중해주자

열 달 동안 몸 안에서 품고, 힘들게 낳아가며 온몸으로 아이와 함께했던 엄마의 육아와 아빠의 육아는 시작부터 불공평하다. 임신 중에도 나는 커피 하나, 과자 하나 먹을 때에도 아기부터 생각하는데, 아빠가 될 사람은 도대체 아기 생각을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유전자 검사해봐야 내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특히 모유수유를 하면서부터 나는 이제 명백히 남편을 제치고 아기한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아기'보다 '내 아기', '내 새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가와 아빠의 애착형성을 위해 나름대로 저녁 목욕과 막수 분유는 오로지 아빠 몫으로 하는 룰도 정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가 아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내심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나는 아기에 대한 마음을 말과 스킨십으로 있는 힘껏 표현한다. 아침마다 아직은 작은 아가를 폭 안고 집안 구석구석 산책시키면서 아기 입장에서 재잘재잘 여기저기 말을 걸어준다.


안녕 나 여울이야~ 몬스테라 잘 잤니?


모빌 친구들 안녕~ 오늘도 재밌게 놀자!


아가가 혼자 놀 때는 옆에 누워서 간질여주든가, 집안일하면서 아가 옹알이에 꼬박꼬박 대답해준다. 낮잠에 들 때면 멋대로 개조한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거의 대부분 '사랑해 우리 아가' 같은 가사다) 자장가를 불러주고, 온 얼굴에 뽀뽀를 퍼부으면서 잠에서 깨운다.


가끔 친정엄마가 오실 때면 나랑 똑같이 하이톤으로 호들갑 떠시며 아가를 하루 종일 안고 계시는데, 이럴 때면 내가 엄마를 똑 닮았구나 싶다. 이것이 엄마들의 육아법인 것일까.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나보다 한술 더 떠서 아기가 침대에서 조금만 칭얼거려도 호로록 달려가서 안아주는데, 이걸 보고 내 남편은 장모님에게 '호로록 할머니'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엄마에 비하면 아빠의 표현법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내 남편은 적당히 표현을 잘해주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의 호들갑에 비할 수가 없다. 아가를 분명 예뻐하지만 아가에게 건네는 말은 "으미 귀여운 내 새끼", "우리 아기 너무 귀엽다" 정도이다. 주말에 아기 좀 봐달라고 하면 어느새 어딘가 아기를 뉘어놓고 곤히 재우려 하고 있다. 나는 아기 눈 보고 재잘재잘 교감해주길 바랐는데, 그는 나름대로 아기가 보다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조용히 먼저 기저귀 쓰레기통을 비우고, 젖병을 씻어놓고, 내가 가끔 새벽에 못 일어날 때면 출근 준비에 바쁠 텐데도 기꺼이 아기를 어르는 모습을 보면 아빠도 아빠의 방식으로 열심히 사랑해주고 있구나 싶다. 주변에 육아 선배가 많은 남편은 이것저것 열심히 묻고 다니며 나에게 육아팁을 공유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남편은 엄마인 나를 돌봐주면서 아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요리 못하는 나를 위해 매번 미역국을 끓여 놓고 밑반찬을 해놓는다. 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사다 주기도 하고, 나 대신 당근 거래를 위한 원정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잘 씻지도 못하고 초췌한 나에게 이쁘다, 아기보다 널 더 사랑한다 말해주는 건 정말 큰 위안이 되어준다. 지금은 유일한 가장이 되어 열심히 돈을 벌어와주고 있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오롯이 아가 생각에만 집중하면서 아가를 사랑해줄 수 있다. 서로가 비교우위를 가지는 지점에서 최선을 다해 가정을 챙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역할분담이다.


이렇게 또 나와 다른 남편을 알아간다


연애 때부터 남편과 나는 사사건건 다른 점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서로를 관찰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여 가면서, 나와 다른 상대의 면모에 감탄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왔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 짜릿하고 소중하다. 그게 우리의 사랑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가를 사랑하는 방식도 우리는 너무나 다르지만, 덕분에 온 감각을 동원해 다시 한번 남편을 알아가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늦잠 좀 자겠다고 남편에게 아가를 부탁한 일이 있었다. 밖에서 아가는 자꾸 보채는데, 남편이 효과도 없이 "오로로~ 아빠 여깄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애써 짜증을 숨기며 거실로 나가보니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참치김밥을 열심히 만들고 있던 남편. 남편의 사랑 방식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면 왜 당장 우는 아이를 안아주지 않고 급하지도 않은 김밥을 만들고 있는 건지 짜증이 번뜩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잘 먹고 잘 쉬는 게 만복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남편만의 사랑법을 대충 알고 있으니 화보다는 어이없는 웃음부터 난다.


지금까지 서로의 다름이 우리의 관계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줬듯이, 앞으로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가를 사랑해주고 때론 서로의 사랑방식에 엄지를 치켜세워가며 세 가족의 사랑을 풍요롭게 채워가야 할 듯하다. 아가 덕분에 남편을 사랑할, 아니 사랑해야 할 기회도 더 많아지고 있다. 여러모로 같이 성장해가는 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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