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개월: 애미야,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마라
요새 아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아기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어찌나 재미나고 맞는 말인지 우리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계속 깔깔대고, 우리가 왜 웃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아기의 표정을 보면 또다시 한번 빵 터진다.
며칠 전 학교를 안 가는 날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남편에게 내일 학교 안 가는 날이라고 자랑을 했더니, 그걸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아기가 "그럼 나도 내일 어린이집 안 가도 돼?"하고 물어보았다. 평일에 엄마는 학교를 가고,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 너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거라고 알려줬더니, 자신의 등원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눈치챈 것이다. 어물쩍 자유부인의 날을 누리려고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둘러댔더니, 끝까지 꼬치꼬치 "왜 그래야 해?"라고 물어보는데 결국에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오늘 아침에는 창밖을 내다보며 "어린이집에 친구가 없어"라고 하길래 혹시 아기가 어린이집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가 싶어서 황급히 "자스민도 있고, 라마도 있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가가 답답하다는 듯이 "아니, 그건 로베르토 선생님이 있는 내 어린이집이고, 내가 말한 건 저 창밖에 어린이집이라고!"라고 짜증을 내었다. 아침마다 종종 우리 집 창문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친구들을 구경하곤 하는데, 그걸 보고 한 말을 괜히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잘못 알아들은 엄마는 멋쩍게 꾸중을 듣는 수밖에 없다.
예전에 여울이가 어른이 되면 엄마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고 했더니, 어느 날 문득 "내가 빨리 크면 엄마 아빠가 할머니 빨리 되고, 내가 천천히 크면 엄마 아빠가 할머니 안 되지~ 나 천천히 클게!"하고 말해준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대견하고 깜찍해서 또 눈물이 찔끔 차올랐다. 가끔 요새 아기가 좋아하는 신데렐라 역할극을 해주며 "신데렐라는 계모와 새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어요"라고 내레이션을 해주면 계모와 새언니 장난감을 들고 신데렐라를 향해 "구박! 구박!"외친다. 구박을 받다는 표현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아기의 사고와 말이 늘어가는 만큼 아기와 대화도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그만큼 매 순간 아기와의 대화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칫 우리의 행동이 자기의 논리에 어긋난다 싶으면 무지막지하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서 훈육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논리를 명확히 잡아서 가르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가만 보면 아가에게 코딩만 제대로 해주면 누구보다 충실하게 잘 이행해 내는데 이게 (해본 적은 없지만) 꼭 프로그래밍 같다. 결국 세상에 나쁜 아기는 없고, 결국 잘 가르쳐주지 못한 부모의 탓이 크다는 말이 더욱 실감 난다. 이제 어물쩍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서 넘어가거나 빈 말을 던지면서 순간을 모면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본인이 이유를 알고 납득을 해야만 이행하는 우리 아기. 또 새로운 육아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은데, 남편과 함께 으쌰으쌰 다시 세 돌 육아도 잘 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