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월 : 깜찍한 잔소리꾼이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38개월의 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깜찍한 잔소리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늙고 지친 부모가 어물쩍 어찌 넘어가 보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불호령을 내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아기의 육아를 아빠에게 떠넘기고 싶어서 슬쩍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려 하니 인상을 팍 쓰며 "아빠 자고 있는데 왜! 이리 와"하면서 나를 만류한다. 젓가락을 떨어트린 아기에게 이제 젓가락이 더 이상 없어 숟가락으로만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씻어 오면 되지! 얼른 씻어다 줘"라고 해결책을 제시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가끔 남편과 의견이 달라 조금이라도 언성이 높아지려는 조짐이 보이면 "엄마아빠 다른 말 하지 마! 둘이 같은 말 해"라는 잔소리가 어김없이 떨어진다. 아기를 재우고 이어가려고 했던 언쟁은 막상 아기를 재우고 나면 어느덧 까맣게 잊히기 마련이라서 도무지 싸울 틈도 안 나는 요즘이다.
그동안 학업에, 육아에, 틈틈이 다닌 여행에 나름 쉴 틈이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매일 신나게 와인과 맥주를 즐겨대었던 탓인지 지난주부터 일주일 정도 몸살에 시달리는 중이라 아기에게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바로 그 주말에 양가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대뜸 "엄마는 몸이 안 좋아요!"하고 고자질을 해버려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술이나 디저트가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조르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보고는 "케이크 먹으면 안 되지! 몸이 아프지!" 하며 남편과 한 편이 되어 내 식단도 관리해 주는 깜찍한 잔소리꾼이다. 요새는 짧은 영어까지 동원해 가며 "컴!", "스탑!"이라고 매우 권위적으로 명령하기도 한다.
다섯 살 때까지 평생 효도를 한다는 말은 어쩜 그리 맞는 말인지. 육아의 효용은 지금 이 예쁜 아가 시절을 잔뜩 온몸으로 비비면서 누리는 데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둘째를 낳더라도 최대한 터울을 두고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아기만 바라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기는 아침에 눈을 마주치면 배시시 웃어준다. 그 웃음이 너무 반짝여서 아침마다 아기의 침대로 기어 들어가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아기와 눈을 맞추고 꼭 끌어 안아 뒹굴거리면서 지금 이 시절을 온전히 내 눈과 몸으로 이렇게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지금 유학을 나오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엄마와 아빠는 수많은 일상의 과제에 밀려 아기와의 눈 맞춤을 자주 뒤로 미루었을 것이고, 회사와 사회의 수많은 관계에 얽매이느라 가족과의 시간을 미루는 것도 얼마든지 정당화되었을 것이다.
유학을 나오고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의 최우선순위가 되었다. 아기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남은 생에 가장 반짝일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을 매일 도란도란 마주 앉아 서로의 눈에 담아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 또 한 번 깨닫는다. 동시에 이런 순간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커리어와 재테크 고민도 함께 늘어간다. 아가야, 너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하는 시간을 더욱 치열하게 채워가면서 앞으로도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