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월: 엄마는 타지에서 행여나 널 잃게 될까 너무 두려웠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 밤이었다. 밤중에 깨어난 아기가 금방 다시 잠들기를 바라며 실눈을 뜨고 자는 척을 하고 있던 밤이었다. 언제나처럼 물을 마시고 돌아온 아기를 끌어안아 토닥여주는데 아기의 몸이 끓는 듯이 뜨거웠다. 갑작스러운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가고, 결국 별이 되었다는 아기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문득 너무 무서워졌다. 응급 의료 시스템도 낯설고,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완전하지 않은 이곳에서 아기가 아프면 어찌해야 할까.
40도가 넘는 체온계의 빨간불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두려웠던 건 처음으로 아기가 자꾸만 헛소리를 했던 까닭이었다.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자꾸 방 벽에 무서운 괴물이 보인다고, 엄마 얼굴에는 빨간 불이 따라다닌다고 중얼대는데 이게 바로 섬망증세인가 싶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별로 망설이지 않고 영국의 NHS 응급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전의 내 성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 이후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100% 확신하고서야 전화를 걸었을 텐데. 8년 전 아빠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가신 이후에는 과도할 만큼 응급처치를 하자는 주의가 되어 버렸다.
통역의 도움을 받아 아기의 상태를 접수하였지만 막상 우리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접수된 순서대로 진찰 전화를 걸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기가 세 돌이 넘을 때까지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해주었던 탓에 내가 너무 오만했다. 세상의 모든 안타까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만 같았다. 8년 전 건강하시던 아빠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실 때에도 이렇게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 아빠를 잃었던 기억이 겹쳐지며 아기를 잃게 될까 봐 나는 사실 누구보다 무서웠다.
그런데 엄마라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그 와중에도 구토를 하며 잔뜩 놀라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애써 괜찮다고 아기를 토닥여주었다. 사실 나는 꽤나 자란 듯하면서도 아직 미숙하기만 한 30대 여성일 뿐인데 아기 앞에만 서면 어찌 그리 용감하고 어른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어린 마음을 꾹꾹 억누르면서 아기를 살리기 위해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그럴듯한 엄마의 가면을 썼다. 그렇게 며칠 내내 나만 찾아대는 아기의 옆에 붙어 아기 상태를 살폈다. "나 아프니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아기를 두고 차마 학교에 가기가 어려워서 과감하게 학교수업도 결석해 버렸다.
다행히 결국 열은 내렸고, 어느새 아기는 컨디션을 회복해 종알종알 예전처럼 수다를 떨고 뛰어다니고 있다. 나를 귀찮고 힘들게 하는 아기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뒤돌아보면 별 일 아니지만, 사실 모든 비극은 별 일 아닌것처럼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다음에도 나는 또다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마음이 쿵 내려앉고야 말 것 같다.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도, 우리 곁에서 이렇게 하루하루 같이 사랑하며 사는 것도 매일 작은 확률이 곱해지며 만들어낸 기적이다. 매일매일 소중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하며 더 후회 없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