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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0. 2021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기쁨
해마다 명절 때면 백화점이나 마트에는 선물 세트가 진열된다. 임시 데스크까지 설치되고 많은 판매원들이 전화 주문을 받거나 직접 주문하러 온 고객들을 응대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대체 저렇게 많은 명절 선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하곤 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와 남편은 명절 선물을 수십 개씩 주문해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양가 부모님께 드릴 과일 세트 한 두 개와 동서에게 줄 선물을 사곤 하는데 수십 개의 선물 세트를 주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
올해도 명절이 다가오면서 백화점은 선물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차례상을 차리기 위한 음식 재료들을 사면서 동서 선물을 하나 골랐다. 명절 때마다 시댁에 모여서 음식 준비를 같이 하지만 동서와 나는 처음에는 명절 선물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동서가 내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동서가 건넨 작은 봉투에는 정성스럽게 고른 선물과 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에는 큰 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하는 내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한 선물이니 절대 부담 갖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동서의 선물을 받고 너무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리고 동서를 위한 선물을 먼저 준비하지 못한 나를 꾸짖었다. 자폐아를 키우며 정말 힘들고 바쁘게 살고 있는 동서를 내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동서의 선물에는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내 취향을 고려하려고 고민한 동서의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떤 해에는 향기가 좋은 바디 로션을 주었고 어떤 해에는 매일 꼭 챙겨 먹으라며 영양제를 주었다. 그리고 어떤 해에는 향기로 지친 마음을 치유해보라며 방향제를 선물했다.
동서에게 명절 선물을 받기 전에는 명절 선물은 그저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동서에게 첫 선물을 받은 이후부터 나도 명절이 되면 동서의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니 명절 훨씬 전부터 올해에는 동서에게 무슨 선물을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소박하고 검소한 동서 취향에 맞지 않는 명절 선물 세트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평소에 내가 사용해봤는데 좋은 제품이나 매일매일 사용하는 제품들 중에서 너무 비싸지 않고 생활에 유용한 제품이 있으면 눈여겨보아 놓았다가 동서를 위해 준비하곤 한다.
작년에는 샴푸를 선물했다. 샘플을 받아서 사용해봤는데 두피 클렌징 효과가 있어 만족스러웠던 샴푸가 있어서 마음속에 찜해놓았다가 동서에게 선물했다.
올해 추석에도 샴푸와 린스 세트를 선물하려고 한다. 작년에 선물했던 것과는 다른 브랜드 제품인데 향이 좋은 제품이라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아 선물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폐아를 키우느라 심신이 지친 동서에게 매일매일 향기로 기운을 주고 싶어서 베르가못 향 샴푸를 골랐다. 그리고 예쁜 포장 보자기도 골랐다. 올해에 내가 고른 선물은 러쉬 샴푸와 린스인데 러쉬에서는 선물 포장도 할 수 있고 재사용을 할 수 있는 낫랩이라는 천 보자기를 판매한다. 디자인이 예쁜 보자기들은 식탁에 깔거나 작은 테이블에 사용하는 등 재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예쁜 보자기가 동서 집 한편을 밝혀주고 동서의 마음도 환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동서 덕분에 명절 선물을 고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명절 몇 달 전부터 동서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참 좋다. 고마운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선물, 이것이 진정한 명절 선물의 의미가 아닐까.
백화점에 진열된 거대한 명절 선물 세트들을 보면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큰 상자에 담긴 선물들이 나는 이렇게 비싼 제품이니 생색을 내고 싶으면 나를 골라라 하고 외치는 것만 같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그런 선물들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올해도 열심히 발품을 팔고 고민해서 동서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고 오랜 시간 고민한 선물은 받는 이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