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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0주년에 은퇴하려고 합니다
퇴사 인터뷰와 질의서
by
아르페지오
Nov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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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퇴사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다. 본사 HR 담당자와 퇴사 인터뷰가 잡혔고 퇴사 사유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 달라는 질의서를 받았다.
다음 주까지 서류를 제출해 달라고 하는데 진짜 내가 퇴사하는 이유를 적어도 될지 고민 중이다.
그동안 퇴사했던 이들은 다른 회사로 이직했기 때문에 퇴사 사유를 솔직하게 적지 못했다고 말했다. IT업계가 워낙 좁으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직장 상사에 대한 비판도 회사에 대한 비판도 적지 못했다고 했다.
은퇴를 하는 나는 사실을 적어도 되지 않을까? 여기에 사실을 적는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작은
흔적
하나는 남기고 떠나도 되지 않을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조용히 나가기는 억울해서 그동안 당한 억울한 일들을 적었다가 그래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서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20년 만에 하는 퇴사라 모든 것이 낯설다. 20년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에 왔을 때도 똑같은 절차를 밟았을 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1년 9월, 나는 퇴사 사유서에 뭐라고 적었을까?
2021년 12월, 나는 퇴사 사유서에 무엇을 적어야 할까?
짐 정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본 회사
건물에 전선줄이
엉킨 모습이 마치 내 회사생활 같이 보였다.
얽히고설킨 전선줄처럼 나를 힘들게 하던 부질없는 관계를 이제라도 끝내게 되어 다행이다.
퇴사 질의서에 수년간 회사에서 지속되었던 만행들을 소상하게 적어서 제출했지만 HR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국 HR은 믿지 못해서 영어로 작성해서 본사에 보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는 걸 보니 내가 괜한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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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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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25년 동안 회사원으로 살았습니다. 직장생활 25년을 꽉 채우고 은퇴한 후 대학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감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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