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나는 명절 연휴에 고객사 서버실에 갇혀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서른 즈음 개발자를 그만두고 외국계 IT 회사로 이직하였다. 나의 직책은 프리세일즈였는데 회사 규모가 작아서 고객사에 가서 제품을 설치하는 기술 지원 업무까지 담당했다. (일반적으로 프리세일즈는 제품이 판매되기 전까지 발생하는 기술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제품 설치는 포스트세일즈 엔지니어가 담당한다.)
서버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려면 서버 전원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휴일이나 연휴에 설치해야 했다. 이러한 업무 특성 때문에 외국 회사이지만 휴일 근무가 꽤 많았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명절 연휴 어느 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기 위해 고객사 IT 센터를 방문하였다.
고객사 IT 센터는 서울 한복판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정비소와 공업소들이 즐비했는데 휴일이라 모두 닫혀 있는 데다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스산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삼십 대의 나는 대책 없이 용감했고 씩씩했다.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친정 부모를 부양하면서 워킹맘으로 어린아이도 키워야 했기에 씩씩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버터낼 수 없었다. 공장 지대에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고객사 센터 건물로 들어가서 서버 관리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바로 서버실로 들어가서 제품 설치를 시작했다.
하필 이 날 설치해야 하는 제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판매된 것이라 몇 시간을 끙끙댔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고객사 담당자도 무리하게 제품을 도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녁을 먹고 다시 설치해 보자고 하였다. 담당자와 저녁을 먹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오류가 발생하면서 설치가 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담당자는 밤을 새울 수도 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세면도구와 옷가지만 챙겨 오겠다며 서버실을 나섰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다른 회사 직원들도 있었고 고객사 직원들도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광활한 서버실에 나 혼자 남겨져 있었다. 수십 대의 서버에서 공포스러운 기계음이 나고 홍채 인식으로만 출입이 되는 서버실에 나 혼자 남겨진 것이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금방 돌아오겠다는 고객의 말을 믿고 설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혼자 집중해서 일하니 두 시간 만에 설치가 완료되었다. 기쁨도 잠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돌아오겠다던 담당자가 두 시간이 넘었는데도 서버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끝내고 나니 잊고 있었던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서버에서 나오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이 강하게 틀어져 있고 기계음과 에어컨 소리가 썩여서 굉음이 나는 서버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보안 때문에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었고 내가 외부로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선 전화뿐이었다. 에어컨 한기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는 오한에 벌벌 떨면서 내선 전화 다이얼을 수십 번, 수 백번 돌렸지만 아무도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절 연휴 새벽 사무실에 누군가가 있을 리가 없었다. 두려움으로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담당자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추위와 공포에 덜덜 떨면서, 별아 별 상상을 하면서 고객사 담당자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고 동이 틀 무렵, 그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며칠간 밤샘 작업에 지쳐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소파에서 곯아떨어져 버렸다고 했다. 어쩔 줄 모르며 미안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이른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때라 집에 가서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명절 연휴가 끝난 후 출근해서도 제품 설치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만 하고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삼십 대의 나는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은 매일 엄마를 찾으며 울었고 암투병 중이시던 아버지는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기댈 곳이라곤 맏딸인 나 하나뿐이었던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했고 회사 일, 육아, 아버지 병간호에 나의 삶은 전쟁터 같았다. 일분일초가 아까웠고 시분초까지 쪼깨서 살아야 했다. 이런 나에게 직원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것은 사치였다. 회사 내의 그 누구와도 업무 이외의 대화를 할 여유가 없었다.
서버실에서 겪었던 공포는 꽤 오래갔다. 제품 설치를 하러 갔다가 또 그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닐지, 개발자를 그만두고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후회도 많이 했다. 평일 대낮에 고객사 건물을 방문할 때도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서야 겨우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그 회사가 내가 설치해 준 제품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판매한 제품이라 고객사 담당자도, 나도 고생을 많이 했는데 십 년 넘게 잘 쓰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도입할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설치도 힘들게 했는데 잘 사용하고 있다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직장 생활 25년,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묵묵하게 견뎌 낸 내게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