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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까지 199일

by 아르페지오

마음속으로 퇴사일을 결정해놓고 회사생활을 견디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퇴사일을 정해놓으니 힘겹던 회사 생활이 조금은 견딜만하다.

내가 한 일을 마치 본인이 한 일처럼 포장해서 전체 회의에서 발표를 하는 사람을 봐도 199일만 지나면 그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참을 수 있고 하이에나들이 가로채간 업적이 내 임을 증명하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지 않게 되니 덜 힘들다.


오늘은 퇴사일까지 199일 남은 날이다. 다음 주에는 직장상사와 일대일 미팅이 있고 사장님과도 일대일 미팅이 있다. 물론 퇴사 때문에 미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의 불문율에 따라 사표를 내는 그날까지 미리 나의 은퇴를 알릴 생각은 없다. 퇴사는 정석대로 한 달 전에 통보할 생각이다.

퇴사 날짜를 정해놓아서 상사나 사장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일대일 미팅 때 솔직하게 말을 할지, 그냥 입 다물고 그들이 하는 말만 듣고 있을지는 고민이 된다.


나의 직장상사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다. 2년 전에 그가 부임했을 때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추진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나의 의견을 경청한 후 그 어떠한 논의도 없이 나의 의견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곤 했다.


결국 1년 만에 나는 상사와 소통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듣기만 하고 간혹 의견을 말하기는 하지만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가 우리 회사에 온 이후 최근 2년 동안 퇴사하거나 다른 부서로 옮긴 사람이 6명이 넘는다. 겨우 스무 명 남짓한 부서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퇴사 혹은 부서 이동을 했는데도 회사는 상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채지 못한다. 대체 employee survey는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영어로 한 땀 한 땀 나의 의견을 제출하지만 결과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자기들 마음대로이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하튼 이렇게 상사와는 대화를 포기했으니 사장님과의 일대일 미팅 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것인지가 고민이다. 내가 말을 하면 사장님이 귀 기울여 주실까, 뭔가 변화가 생길까? 새로운 상사가 올 때마다 새로운 사장님이 올 때마다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매번 실패했으면서 또 괜한 기대를 품는 내가 싫다.


고민하던 중에 최근 5년 동안 직장 상사가 3번이나 바뀌었고 그때마다 안간힘을 다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199일 후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눈과 귀를 닫고 조용히 지내다가 아름답게 퇴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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