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다
월요일 오전 주간 회의에서 발표할 사람이 없으니 아무거나 준비해서 발표를 하라는 지시를 회의 30분 전에 통보받은 후 정신없이 준비를 해서 발표를 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속으로 욕을 하다가 오전이 휙 지나갔고 점심을 대충 먹고 오후 1시 회의에 들어가려고 하던 차에 병원으로부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시아버님의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서 장례식장과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한 수많은 절차들을 밟았다. 겨우 장례식장을 세팅하고 숨을 돌리며 앉아있던 차에 매니저 이름과 조의금 입금을 알리는 알림이 떴다. 아무런 위로의 말도 없이 달랑 입금된 조의금은 나를 씁쓸하게 했다. 장례식장에 못 온다는 통보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인가 싶어 씁쓸했다.
남편 회사, 막내 서방님 회사, 남편과 서방님의 고등학교, 대학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십 년이나 근무한 나의 회사에서도 근조 화환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록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엄마가 장례식장에 오셔서 너희 회사는 근조 화환도 안 보내냐고 버럭 화를 내셨다. 엄마 말씀을 듣고 나니 나도 부아가 치밀어서 허탈해하고 있는데 매니저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근조 화환을 늦게 보내 미안하다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세상에 오늘 미팅을 이번 주 금요일로 연기하자는 이메일이었다. 금요일은 돌아가신 아버님 삼우제를 지내야 하는 날이었다.
시아버님은 친부모가 아니니 3일장만 지내고 출근을 하라는 뜻이었을까, 그나마 배려해서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에 미팅을 하는 "것인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휴가도 내지 못하고 달려왔으니 금요일에는 출근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이메일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멍하게 있다가 남편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더니 그따위 회사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부모님 상에는 일주일 휴가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휴가가 며칠인지 확인하고 올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었다. 장례를 치른 후 집에 돌아와서 이 상황을 꼼 씹다 보니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전 매니저는 가끔씩 출근을 했다. 2,3일에 한번 회사에 왔는데 그때마다 고객사 방문을 하느라 회사에 들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고객을 직원들은 알지 못했다. 새 지사장이 부임하면서 친한 동생을 데려왔는데 그는 기본적인 근태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는 가끔 사무실에 왔고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일을 미뤘다. 그리고 회사가 모르는 고객들을 만나느라 법인카드 한도액을 초과하는 기이한 직장 생활을 몇 년간 지속했다. 지사장이 데려 온 사람이라 관리부에서는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일을 안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일화가 있다. 외국 회사에서는 commission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본인에게 할당된 매출을 달성해야만 월급의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매 분기 commission sheet라는 것을 받아야 내 급여 내역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나의 매니저로 근무했던 2년 3개월 동안 나는 9분기의 commission sheet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급여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라서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매번 finance team에서 주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중요하고 기본적인 업무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우리는 매니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지사장이 잘렸고 지사장에 딸려 왔던 그도 회사를 나갔다. 회사에서는 내보낸 거라고 하는데 그는 자진해서 그만둔 거라고 떠들었다.
다시 새로운 지사장이 왔고 또 새로운 매니저를 꽂았다.
새로운 매니저는 회의를 좋아해서 하루 종일 회의를 했다. 기존에 잘 돌아가던 업무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바꾼다며 이십 년 동안 프리세일즈를 하던 나에게 제품 매출 관리 업무를 맡겼다.
나는 프리세일즈이고 엑셀로 피벗 테이블을 돌려서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수십억의 매출을 관리하는 업무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생전처음 하는 일을 맡아서 월요일 오전 8시 회의가 두려웠다. 세일즈 팀의 데이터 입력은 일요일 자정에 완료되어서 데이터를 취합하고 정리해서 월요일 오전 8시에 발표를 해야 하는 나는 일요일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업무였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끈기로 5개월을 버텼다. 5 개월이 지난 후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했더니 finance team의 과장을 회의실에 불러서 업무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했다. 25년 차 프리세일즈인 내가 한참 어린 회계팀 과장에게 업무를 배워야 한다는 것도 기가 막혔지만 배워서 될 일도 아니고 배워서 하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간곡하게 이야기했는데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제품 데모를 하고 RFP/RFI를 쓰는 프리세일즈 업무를 하면서 매주 특정 제품의 매출까지 정리해서 보고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십오 년의 나의 프리세일즈 경력을 무시하는 매니저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불면증으로 잠도 못 자고 분노 때문에 숨이 안 쉬어졌다. 결국 회사에 심한 스트레스로 업무를 할 수 없다고 알리고 2개월 병가를 신청했다.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내가 달라진 것처럼 매니저도 조금쯤은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간곡하게 감정에 호소를 해도, 논리 있게 자료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해도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갔다. 결국 나는 매니저와의 소통을 포기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서 몇 개월 남은 20주년까지만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이 엿 같은 인간은 월요일에 상을 당한 직원에게 금요일에 미팅을 하자고 이메일을 보냈다. 차라리 일을 안 하고 회사에 가끔 출근하던 이전 매니저가 나았다. 구관이 명관이었다.
뭐 이런 엿같은 사람이 다 있는지, 나만 이런 엿같은 경험을 하는 건지 세상에 크게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다.
시동생은 아버님 삼우제를 지내야 하는 금요일에 출근을 해야 해서 삼우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휴가 낸 것을 알면서도 상사가 장례식 내내 전화를 했는데 결국 금요일에는 출근하라고 했단다. 세상에는 나의 매니저보다 더한 놈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세상이니 이 놈이 가고 나면 더한 놈이 올 것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름답게 퇴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