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 오십인데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면 인생에 대해 다 알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인생은 어렵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보다 나은 길로 갈 수 있는지 우리는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한다. 오늘은 25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깨우쳤던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첫째, 회사에서는 착하게 살면 안 된다.
회사는 전쟁터이고 착한 사람은 전쟁터에서 필요 없다. 좋은 마음으로 한두 번 남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하면 거머리처럼 빌붙어 사는 인간들이 생긴다. 물론 나의 일을 하면서 남의 일까지 거뜬히 도와줄 수 있는 슈퍼맨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호의로 혹은 답답해서 한두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거머리들은 나에게 착 달라붙어서 기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의 도움이 당연한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하고 저 사람이 도와주지 않아서 일을 못했다고 뻔뻔하게 나를 탓하기도 한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말고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라.
둘째,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학창 생활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권리를 당차게 주장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치열하게 쟁취하는 태도를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나의 업적을 광고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한 일을 떠벌리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절대 대우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성과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데도 다른 사람이 높은 고과를 받고 보너스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내가 나의 업적을 떠벌리지 않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외국 회사에서는 RSU(Restricted Stock Unit)라는 보너스제도가 있다. 성과가 좋은 직원에게 주식으로 보상을 주는 제도인데 나는 근속 20년 동안 단 한 번 RSU를 받았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매년 RSU를 받았다는 것을 사표를 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퇴사하겠다는 뜻을 비췄더니 매니저가 RSU를 주겠다며 설득을 했다.) 은퇴를 결심한 후에야 보너스나 보상은 징징대고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씁쓸하다.그저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알아줄 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론 무례한 부탁을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되는데 이럴 때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나와 남편은 둘 다 IT 업계에서 일하는데 25년 동안 남편이 야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평일에도 일을 싸들고 오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회사에 가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회사 일을 너 혼자 다 하냐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예전에는 남편 회사는 워라밸이 보장되는 회사이고 나는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둘 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남편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거실을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니 남편의 회의 내용도 가끔 듣게 되었는데 남편은 본인이 업무가 아니면 딱 잘라 거절한다. 주저하는 틈도 없이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 생활은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 나는 내 업무가 아니더라도 거절을 잘하지 못하고 남의 업무까지 떠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태도는 가사 분담에서도 반영되었는데 지인들은 우리를 개미와 베짱이 부부라고 불렀다. 아이의 수험생 시절 나는 수험생인 아이도 챙기고 회사 일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반면 남편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며 주말이면 골프를 치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베짱이처럼 지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서운해서 많이 싸웠지만 남편을 바꿀 수는 없으니 아이 뒷바라지는 나 혼자 감당했다.
여하튼 회사 생활에서도 나의 태도가 나의 업무량을 결정한다. 쿨하게 거절할 줄 알고 약간은 싸가자없는 인간이 되면 나의 업무량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단 중요한 것은 싸가지는 없지만 능력이 없다고 보이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퇴사하려고 결심하고 나니 회사에서 어떻게 살았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이젠 내게는 소용이 없는 노하우이지만 곧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 우리 아들이라도 아빠를 닮아서 지혜롭게 회사 생활을 하길 바랄 뿐이다.
추신 :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고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정작 해답은 내게 있었다. 내가 바뀌어야 했던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