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by 아르페지오

이 회사에 근무한 지 만 20주년이 되는 날에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그런데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속 20주년을 채운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내가 과연 200여 일을 버텨낼 수 있을까.


시아버님 장례식을 치르고 이번 주 월요일에 복귀했다. 설 연휴가 끼어 있어서 나의 공백 기간이 더 길게 느껴졌던 건지 업무가 무시무시하게 밀려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애써 기운 차리고 마음을 다잡으며 새벽에 컴퓨터를 열었는데 영업 사원의 이메일에 기분이 상했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난주에 예정되었던 내부 교육을 언제쯤 할 수 있냐고 문의하는 이메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배려심이 없을까?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겨우 일주일 연기되었던 내부 교육이 그렇게 긴급한 것일까? 부모님을 잃은 동료의 슬픔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언제 출시될지 모르는 제품 교육이 그렇게 급한 것일까.


이 사람은 나와 같이 일한 지 9년이 넘은 사람이다. 그런데 장례식에 조문도 오지 않았고 조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장례식 절차가 끝난 후 남편이 바빠서 조의금 명단을 정리했는데 명단을 보다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20년이나 근무한 회사에서의 인간관계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서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하더니 그동안 직장 동료들의 대소사를 쫓아다니며 부조금을 꼬박꼬박 낸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감정을 다스리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내부 교육은 차주에 진행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일주일 휴가를 낸 것은 죄가 아닌데 괜스레 내가 죄를 지은 느낌이 들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 다른 팀에서 이메일이 왔다. 경쟁사 비교 자료를 긴급하게 제출해야 해서 프리세일즈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메일의 CC 리스트가 아닌 TO 리스트에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영업 사원과 같이 일하는 프리세일즈가 팀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지정된 프리세일즈가 아닌 다른 팀에 소속된 내게 지원 요청을 보냈다.) 바로 이어서 상사가 중요한 건이니 내가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본 순간 '이런 정말 엿같은'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장 사표를 던지고 이런 인간들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나의 매니저에 대해서는 이런 엿같은 매니저라는 글을 참고하면 된다.) 시아버님 삼우제 날 회의를 하자고 이메일을 보낸 놈인데 뭘 기대하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시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복귀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에 대한 배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대체 왜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내게 요구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한 후 이메일을 썼다. 그동안 밀린 저희 팀의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버거워서 도저히 다른 팀의 지원 요청은 처리할 수 없다고 보냈다. 내가 이메일을 보낸 후 상사는 원래 지정된 프리세일즈에게 경쟁사 비교 자료를 만들라는 이메일을 다시 보냈다. 버젓이 담당 프리세일즈가 있는데 왜 나에게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인지, 나는 왜 매일매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싸워나가야 하는지, 나는 왜 쓸데없이 열심히 일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건지 답답하다.


갑자기 근속 20주년을 채운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회사 생활은 내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길 같다. 부모님 말씀을 따라서 약사나 의사를 할 걸 괜히 회사원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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