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2

by 아르페지오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주말 오후,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복통으로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강남에서 약속이 있어 외출했던 남편이 심한 복통 때문에 택시를 타고 근처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간호사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하필 주말 오후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할 시간이라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응급실로 갔더니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장폐색이 온 것으로 의심되어서 제일 강한 진통제를 투여했고 멈춘 장은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진통제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진통제는 듣지 않았고 남편의 통증은 계속되었다. 다른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이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의료진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면서 또 몇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이 구토를 했고 속에 있는 음식물을 다 쏟아내더니 진통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결국 입원을 해서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입원 수속을 하고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에 올라오자 또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데 의사의 지시대로 배를 마사지해 주는 것 밖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밤새 배를 마사지해 주고 찜질팩을 갈아주다가 길고 긴 하루가 지났다.


병원에 온 지 열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진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담당 의사는 장폐색(장이 꼬이거나 장의 일부가 마비된 증상)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며칠 경과를 보고 장 기능이 돌아오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폐색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기능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한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말썽을 부렸던 장은 잠깐 다시 기능을 회복해서 기대를 품게 하더니 다시 더 심한 폐색을 몰고 왔다. 결국 남편은 수술을 했고 지금은 회복 중이다.


마음을 졸이다가,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픈 남편도 힘들겠지만 갑자기 간병을 하게 된 나의 몸과 마음도 지쳐갔다. 그렇게 지칠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진하고 달달한 커피 한잔이다.


병원의 아침은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새벽 4시가 되면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혈액 검사를 하러 온다. 밤새 고통에 시달리는 남편을 돌보느라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모르겠는 몽롱한 상태인데 새벽 4시가 되면 병실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다. 비몽사몽 하면서 혈액 검사를 받고 나면 이번에는 엑스레이나 CT를 찍으러 가야 한다. 이송 기사님이 오셔서 환자를 검사실에 데리고 갔다가 다시 병실로 데려다 주기 때문에 보호자는 병실에서 기다리면 된다.


멍하니 방에서 기다리다 보면 피곤에 지쳐서 잠이 솔솔 오는데 남편이 방에 오자마자 또 다른 할 일(피주머니를 비우거나 소변통을 비우는 등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보호자는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이때 카누 한 봉지와 맥심 한 봉지를 섞은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신다. 간병을 하는 보호자는 아침 먹을 시간도 없기 때문에 달달한 커피라도 마셔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전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보름이 넘는 간병으로 피곤에 절어 있는 내 몸은 웬만한 카페인으로는 꿈쩍도 안 하기 때문에 당분과 카페인을 농축한 진한 커피로 나를 깨운다.


매일 새벽 커피를 마시면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떠올랐다. 지안이 커피믹스를 여러 개 넣어서 호호 불면서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 내 모습이 그녀와 오버랩되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을 한 후 아르바이트까지 한 지안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을 것이다. 집에 와서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돌봐야 했던 지안은 커피 믹스로 없는 힘을 쥐어짜 냈을 것이다. 감히 지안에 견줄 만큼은 아니지만 보름이 넘는 간병 생활로 나의 몸과 마음도 지쳐간다. 하루빨리 퇴원을 해서 집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달달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글을 쓴 지 3일 만에 남편은 퇴원했고 나의 긴 간병 생활도 끝이 났다. 무탈하고 소소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는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큰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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