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신"은 2013년 4월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드라마이다. 부장님도 쩔쩔매는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과 정직원이지만 슈퍼을로 살고 있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당시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고 있을 때라 감정 이입을 하면서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미스김은 자발적으로 계약직으로 일하는 원더우먼이다. 자격증이 120여 개나 있고 무슨 일이든지 완벽하게 해내지만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이상 일하지 않고 3개월 이상 계약하지 않는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스페인으로 가서 자유를 만끽하다가 일하고 싶어지면 한국으로 돌아온다.
요즘에는 드라마 소재도 다양해져서 직장인의 애환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많지만 2013년에는 직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미스김 같이 특이한 캐릭터는 처음이라 보자마자 빠져들었다. 시청률도 높았고 김혜수가 이 드라마로 연기 대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나만 재밌게 본 것은 아닌 듯하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이지만 작가가 한국 노동법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고 실제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조사를 많이 했는지 한국 정서에 맞는 에피소드로 수정이 되고 배경지식까지 같이 소개해줘서 좋았다.
취업이 잘 되던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계약직으로 일해보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 계약직이 많아지는 추세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니 매우 유익하기까지 했다.
미스김은 절대 능력자이다. 무슨 일을 맡겨도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 사전에는 불가능과 연장 근무라는 단어가 없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미스김이 정말 부러웠는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내 능력만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한다. 그런데 미스김은 이 모든 일들을 혼자 힘으로 척척 해낸다. 항공 정비사 자격증, 중장비 기사, 공인 중개사, 심지어 몽골어 회화 자격증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미스김에게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판타지가 가능할까? 한 사람이 회사에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직급이 올라갈수록 맡겨지는 대부분의 업무는 여러 부서 혹은 파트너사와 협업을 해야 가능한 일들이었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협업이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는 직장이라는 생태계에는 사기꾼도 있고 무능력자도 있고 남의 등을 쳐 먹는 인간들도 있으니 협업 과정에서는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연차가 17년 차쯤 되었을 때라 협업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래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미스 김 같은 직장의 신이 되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헛된 꿈을 꾸었다.
직장 생활은 고달프다. 신입 사원 때는 멋모르고 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 생활은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 사표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의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면서 꾸역꾸역 버터 낸 나의 25년 회한과 노고를 알까? 평생 돈 한번 벌어보지 않은 우리 엄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펄쩍 뛰셨다. 나의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알면서도 꾹 참고 다니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너무 서러워서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더 이상 생계를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데 아픈 딸에게 더 일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직장 생활을 나에겐 더하라고, 참으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뭐라고 하시든 나는 은퇴를 강행했고 은퇴 4년 차가 되었지만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미스김 같은 능력을 지녔더라면 다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근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당당하게 "노"라고 말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협업을 하라고 하면 "싫다"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직장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존버하는 직장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버텨 낸 모든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가장의 노고를 헤아려주길, 월급은 남편의 혹은 아내의, 아빠의 또는 엄마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