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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

by 아르페지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B급 코미디를 표방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는 대사가 아주 많다. 등장인물들이 싶은 말을 따따따 늘어놓는다. 드라마 포스터에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쏟아낸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평범하다. 동화 속 왕자님같이 멋있는 남자 주인공도 없고 가난하지만 어여쁜 여주인공도 없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패러디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극에 묻어있다. 심지어 PPL마저 자연스럽다.


맬로가 체질은 모든 면에서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다른 생소한 포맷의 드라마이다. 그런데 그 생소함이 싫지 않았다.


주인공은 이십 대에서 갓 서른이 된 여자 친구 세 명이다. 어쩌다 보니 이들은 한 친구의 집에 같이 모여 살게 되고 드라마는 이들의 지난 연애사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드라마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드라마 제작사 마케팅 팀장이어서 이들의 일상, 고민, 연예 스토리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환상 또는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들이 맥주를 마시면 나도 남편이랑 맥주 한 캔을 가져와서 드라마를 맛있게 보았다.


이 드라마에 푹 빠져서 이병헌 감독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이 드라마가 그의 첫 작품이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이전 드라마가 몇 개 있었지만 정규채널에서 방영된 것이 아니고 미니 드라마이다.). 첫 작품이 이렇게 신선하고 재밌다니 정말 놀라웠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드라마는 멜로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세 명의 주인공의 연애사를 풀어나가면서 인생, 사랑, 친구, 우정에 대해 감독과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을 뱉어낸다.


오십이 넘은 내가 보기엔 서른이라는 나이는 풋풋하고 뭐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녀들은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인생의 무게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서른 살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다. 결혼을 일찍 한 나는 서른에 결혼 5년 차였고 4살 아이의 엄마였다. 꿀이 떨어지고 행복해야 할 시기였지만 일과 육아에 치여서 겨우겨우 하루를 버터내고 있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친정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암투병 중이라 도우미를 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월급은 만져볼 틈도 없이 병원비와 생활비로 빠져나갔고 스트레스와 피곤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사랑에 굶주린 아이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 가사를 전혀 도와주지 않던 남편에게는 더 매몰차게 굴었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 싸늘한 사람으로 통했다. 일분일초를 나눠서 써야 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젊음을 다시 돌려준다 해도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바로 서른이었다.


나의 서른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인지 드라마 주인공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인생의 무게가 저 정도만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싶었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새로운 사랑에 섣불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는데 그들이 아직 젊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할 때는 진심으로 응원했다. 내 인생에 멜로가 별로 없어서인지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드라마도 좋아한다. 그래서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가 좋았다.


여러 번 봐도 지겹지 않은 드라마,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드라마,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드라마가 바로 멜로가 체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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