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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우리는

by 아르페지오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청춘을 담은 드라마이다. 이나은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청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교 일등도 전교 꼴등도 청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19살 청춘 남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였다. 드라마 OST도 인기를 끌었고 주인공의 작품으로 소개되는 일러스트 작품도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주인공이 화가여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작품이 너무 좋아서 작가를 찾아보았다. 처음으로 그림을 하나 사서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10년이 지난 29살에 다시 만난 주인공의 서사가 펼쳐지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풋풋함이 좋았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과 비범한 듯 하지만 비범하지 않은 여자 주인공의 인생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방식도 좋았다.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연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교 일등을 하고 그리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그래서 그다음엔? “라는 묻는 웅이의 질문은 큰 울림을 주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대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취업을 하면 성공할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보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18년간의 학업, 25년간의 직장생활 후 남은 건 피폐해진 몸과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앞만 보고 달린다. 10대에는 가끔씩 하늘을 보면서 멍을 때리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도 필요한데 대한민국에서 그런 시간은 사치로 여겨진다.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대학에 입학한 후 충격을 받았다. 겨우 이런 곳에 오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나 하는 절망 때문이었다. 시험만 잘 보면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차디찬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보다 먼 미래를 고민해보았어야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았어야 했다. 긴 사색과 고민의 시간을 가진 후에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중요한 선택을 학력고사 점수라는 하찮은 숫자에 맞춰서 했던 것이다.


대학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대부분의 수업은 지루했고 캠퍼스 라이프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모든 시간을 내가 만들고 개척해 가야 한다는 현실에 적응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히 전공과의 타협점을 찾아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취업을 했고 25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본 우리 아이들의 현실도 우리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진로 교육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일 뿐 아이의 진로 결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1세기에 태어 난 아이들 역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보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있었다.


전교 꼴찌였던 웅이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해 볼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그 덕분에 웅이는 자산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꿈을 향해 꾸준히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니 성공도 하고 돈도 벌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가난을 짊어지고 태어난 연수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또 열심히 노력해서 취업을 했다. 그리고 또 열심히 일해서 정직원이 되었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팀장 타이틀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여전히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후에 다시 만난 연수와 웅이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전교 일등이었던 연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아등바등 살고 있었다. 전교 꼴등이었던 웅이는 화가로 성공해서 멋진 작업실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아서 그런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열에 반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 해 우리는”과 “슈롭”을 볼 것을 추천한다. 더불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읽어보면 좋겠다.


점점 더 과열되고 있는 입시 경쟁에서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의 부모이다. 그런데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부모들을 많이 보았다. 아이를 대학에 보낼 때까지 나에게도 수많은 위기가 찾아오곤 했다. 학원 선생님이, 학부모들이,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공포심을 조장해서 나의 신념을 흔들 때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를 꺼내서 읽었다. 학원에서 협박을 해도, 학부모들이 겁을 주어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에게 6시간 수업을 권유하는 학원은 무조건 걸렀다. 수험생은 밥도 먹지 말고 연강을 들으라고 하는 고등 학원도 무조건 제쳤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아이를 키웠으면 좋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해야 할 것들은 아이의 먼 미래를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청춘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했을까?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보아도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나는 드라마를 본 후에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를 책장에서 다시 꺼냈다. 전공 수업보다 훨씬 더 재밌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은 주옥같은 고전들을 소개해 주셨고 그때 읽었던 책들이 양분이 되어서 나를 지탱해 주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멍 때리기도 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 대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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