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이다. 회차마다 환자들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같이 풀어나가는데 누구나 다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의사나 간호사들까지도 환자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어서 좋았다.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어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 수간호사 선생님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전한 대사에 드라마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주인공인 간호사 다은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간호사였던 다은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도 거부하다가 자신의 병을 마주하게 되고 환자 입장에서 정신병동 생활을 경험하면서 우울증을 치료하고 병원에 복귀한다. 다은의 정신병 이력을 알게 된 환자 보호자들이 그녀를 해고하려 하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되고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정신병동에 입원해 보고 심한 우울증도 경험해 본 다은은 이전보다 더 훌륭한 간호사가 되지 않았을까.
드라마에서 병동 생활에 대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놀라웠다. 검색해 보니 정신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작가가 쓴 웹툰이 원작이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스토리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던 것 같다. 정신병 환자를 다루다 보니 주제가 무겁고 어두울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좋았다.
총 12회의 드라마에서 공황장애,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강박증을 가진 환자들의 에피소드가 다양하게 소개된다. 뉴스에서만 접하던 정신질환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공감이 되는 사례가 많아서 재밌게 보았다. 여러 사례 중에서 특히 직장 상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입원한 환자의 에피소드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 내에서 상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어 다양한 보호장치가 도입되고 있지만 제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많다. 드라마를 본 후 나의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았는데 내가 겪은 상사의 폭언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직장 상사는 20년 넘게 프리세일즈로 일한 내게 갑자기 매출 데이터 관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프리세일즈 업무는 그대로 하면서 생전 처음 하는 업무를 맡겼는데 필요한 교육도 시켜주지 않았다. 매주 월요일 회의 때 보고서를 발표할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십 명이 넘는 영업 사원들의 매출 데이터를 취합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는데 단 한 사람도 마감 날짜를 지키지 않았다. 발표 시간까지 실시간으로 취합되는 데이터를 회의 시간 중에도 수정해 가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으니 숫자가 정확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보고서의 숫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상사는 수십 명의 직원 앞에서 내게 폭언을 퍼부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식사도 하지 못했다. 참다 참다가 인사부에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며칠 휴가를 다녀온 후 상사와 잘 지내보라는 대답뿐이었다. 외부에는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떠들었지만 인사부는 허수아비였다. 인사부 차장은 이미 나의 상사와 말을 맞추고 온 듯 나의 모든 주장을 반박했다. 결국 휴가를 내고 푹 쉬면서 심사숙고를 한 후에 사표를 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당한 일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다행히 나는 사표를 냈고 직장 내 괴롭힘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나처럼 용기 있게 사표를 낼 수 있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될까? 3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에 느꼈던 부당함과 억울함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폭언을 일삼던 나의 상사는 아직도 회사에서 잘 지내고 있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직원 여러 명이 그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들었는데 여태 건재한 것을 보면 인사부는 여전히 무용지물인 듯하다.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보다가 3년 전 기억이 떠올라서 많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좋은 드라마이다.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어둡지만 따스한 메시지가 있는 드라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