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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Feb 20. 2021

새벽에 마시는 커피

나는 십 년 넘게 불면증으로 고생하였고 현재는 불면증과 친구가 되어 같이 살아가는 중이다.


나의 불면증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서 시작되었다.

삼십 대 초반, 일도 육아도 놓치지 않으려고 일분일초를 다투며 치열하게 살았다. 일을 잔뜩 싸들고 퇴근했는데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재우다가 초저녁에 아이와 같이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서 밀린 회사 일을 다. 몇 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 할 일이 없어도 새벽 4시면 눈이 떠지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 일찍 기상하는 습관은 나쁜 습관은 아니다. 문제는 늦게 잠든 경우인데 자정이 넘어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니 두세 시간도 못 자는 날들이 쌓여갔다. 불면증 초기에는 수면 클리닉을 다니면서 커피를 몇 달 동안 끊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후에도 불면증에 좋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결국 불면증을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불면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의 수면 패턴은 저녁 10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나 3시에 깨는 것이다. 새벽 2,3시쯤 일어나서 거실에 나오면 대학생이 된 아들은 게임을 하거나 공부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익숙하게 모닝(?) 인사를 하고 아들은 거실 사용권을 나에게 넘긴다.


이제부터 남편이 기상하는 오전 7시까지 거실은 온전히 내 차지이다.

식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제일 작은 등 하나만 켜 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새벽에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나름 커피 애호가로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지만 조용하고 적막한 새벽에 시끄러운 에스프레소 머쉰을 켤  없으니 새벽의 커피는 언제나 커피 믹스이다. 그러다 보니 커피 믹스를 종류별로 다 먹어보았는데 나의 원픽은 카누 라테이다. 남양 루카스 라테는 우유 맛이 텁텁하게 남아서 뒷맛이 깔끔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슈로 시끄러운 기업이라 될 수 있으면 남양 것은 먹지 않는다. 그 외에도 다른 브랜드에서 나온 커피 믹스를 이것저것 먹어보았지만 내 입맛에는 카누 라테가 제일 깔끔하고 맛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카누 라테를 마시며 새벽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다.


불면증과 십 년 넘게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이젠 불면증이 두렵지 않다. 불면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기 때문이다.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고 무엇이 나를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지 원인을 찾게 되면 불면증은 곧 사라진다. 때론 그것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임을 안다.


불면증 덕분에 새벽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글을 쓰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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