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0주년 기념일에 퇴사하려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지라 매일 아침 디데이 계산기를 실행해서 남은 근무 일수를 확인하고 있다.
매일 아침 남은 근무 일수를 체크하는데 새로운 앱을 설치하는 것은 싫고 디데이 계산기를 제공하는 웹 사이트에 들어가서 체크하는 것도 귀찮아서 꼼수를 하나 생각해 냈다.
25년여 년의 고된 회사 생활을 버텨하느라 내 몸은 여기저기 아프다. 십 년 전부터 원형 탈모로 고생 중이고 스트레스가 심하면 장염이 도져서 며칠을 고생한다. 빈혈도 심해서 센 철분제를 처방받아서 먹고 있는데 철분제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다.
골골하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남편이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사 왔다. 그런데 챙겨 먹어야 할 약이 너무 많으니 종합 비타민을 먹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예전에는 새벽에 급하게 출근하느라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기에 아침을 먹을 때 종합 비타민을 먹으라는 남편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
요즘은 재택근무로 남편과 아침 식사를 같이 하니 남편이 비타민을 챙겨줘서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있다. 습관처럼 아침을 먹으며 디데이 계산기를 실행해서 남은 근무 일수를 확인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나씩 챙겨 먹는 종합 비타민을 디데이 계산기로 사용해 보면 어떨까?
퇴사일까지 남은 날수를 계산하고 그만큼의 종합 비타민을 투명한 유리병에 넣었다. 이렇게 종합 비타민을 넣어두고 하루에 하나씩 챙겨 먹으면 유리병 안에 남은 비타민 개수로 남은 근무 일수를 알 수 있으니 일석 일조가 아닌가.
바로 실행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나니 왠지 뿌듯하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나는 이런 잔머리에 강하다. 회사에서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을 잘 생각해 내곤 했다. 생각해 보니 이러한 융통성이 프리세일즈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동료들은 주변을 잘 보지 못했다. 동료들이 정석대로만 판단해서 방법이 없다고 할 때 내게는 정석은 아니지만 돌아가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곤 했다.
이십 년 전 처음 프리세일즈를 시작했을 때 한국 프리세일즈 팀에서 여성은 나 혼자였고 그 후로 십여 년 동안 아시아전체프리세일즈 팀 중에서도 여성은 나 혼자였다. 여성 인력 비율이 많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여직원들은 마케팅이나 오퍼레이션 팀 소속이었고 테크 분야에서는 남성 비율이 높았다. 아시아 퍼시픽 지역에서 십 년넘게 유일한 여성 프리세일즈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이런 융통성도한몫하지 않았을까.
나만의 퇴사일 디데이 계산기를 만들었으니 이제 매일 디데이 계산기를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 남은 날까지 비타민을 잘 챙겨 먹으며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상차받지 않으면서 잘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