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니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조금이라도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집에 오면 아이와 꼭 붙어있다 보니 아이를 재우다가 초저녁에 같이 잠들곤 했다. 퇴근 후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밀린 회사 일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은 이미 굳어진 습관이 되었다.
처음 직장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했다. 눈덩이 같이 불어나는 병원비도 부담이었지만 몇 년 동안 이어진 간병 또한 식구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길고 긴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간병에 지치셨던 엄마가 쓰러지셨다. 정신없이 엄마를 돌보고 남겨진 일들을 수습하고 나니 이번엔 내가 쓰러졌다. 수술을 하고 병원침대에 누워있는데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서 엉엉 울었다. 놀라서 허둥대는 남편에게는 수술한 상처가 아파서 우는 거라고 둘러댔지만 내 인생이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의 나에게 여유라는 것은 없었다. 젊음을 다시 돌려준다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참혹하다.
일 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내는 시댁엔 며느리가 셋이지만 큰 며느리는 외국에 산다는 핑계로 한 번도 제사를 지낸 적이 없다. 자폐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서에게 부담을 줄 수도 없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큰 며느리도 아닌데 큰 며느리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이십여 년 넘게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야 했으니 남들처럼 설 연휴에,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명절 연휴에 쉬지 못하니 1월 1일 하루라도 쉬고 싶은데 딸밖에 없는 우리 엄마는 굳이 그날 차례를 지내셨다. 1월 1일에는 친정 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고 겨우 숨을 돌리고 나면 시댁의 증조할머님 제사와 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초부터 제사와 차례에 치여서 허덕이다 보면 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낀 황금연휴가 다가왔다. 그런데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은 아버지 기일이라 또 제사를 지내야 했다. 5월의 황금연휴조차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시댁과 친정을 합쳐 일 년에 제사만 6번,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연휴에 한 번씩 여행도 가거나 푹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 내겐 그런 휴식의 기회조차 없었다.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니 입시를 위해 엄마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쉬는 날에는 무조건 학원 설명회에 가서 대학입시를 공부했다. 평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휴일마다 대치동에 가서 입시 설명회를 들었다. 3년 내내 모든 휴가와 휴일을 아이를 위해 썼고 입시 설명회를 듣고 듣고 또 듣다 보니 길이 보였다. 3년 후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우리 아들은 요즘도 가끔씩 엄마 덕분에 자신이 재수를 하지 않았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이렇게 25년 넘게 쉼 없이 살다가 이제야 내 시간이 생겨서 남들처럼 연휴에 여행이나 다녀보려고 했더니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덮쳤다.
2020년 5월,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가려던 유럽 여행을 취소했다. 난생처음 황금연휴에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몇 개월 동안 설레면서 이 날만을 기다렸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일 년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올 해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해외여행을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여행으로 쉼 없는 삶에 대해 보상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만 했다. 25년 내내 쉼 없이 살다가 이제야 겨우 여행을 다녀보려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지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동료들이 휴가 때마다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면 나도 세계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닐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덮쳤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생각에 짜증이 났고 난생처음 경험하는 재택근무와 집콕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허덕이며 일 년을 보냈다.
올해 5월 연휴도 그냥 집에서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동해에 다녀왔다. 동해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어릴 적 부모님과 피서를 다니던 시절에 머물러 있어서 사실 별 기대 없이 떠났다.
그런데 정말 너무 좋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파도 소리를 실컷 듣고 맛있는 것도 먹고 왔더니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갔다. 나중에 남편도 퇴직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달 살기에 대한 글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다.
작년 한 해는 짜증도 내고 원망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며 살았는데 올해에는 더 이상 불평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찾아서 즐겁게 살아보려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습관 덕분에 여행지에서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동해 바다의 일출도 멋있었지만 해가 뜨기 전 새벽의 고요함을 머금은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