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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Apr 15. 2023

두 세계의 교차점이 미나리꽝으로 흐르다

텃밭에 미나리꽝을 만들다

이 글은 작년(2022) 4월에 만들었던 미나리꽝 이야기를 다시 사진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그때, 4월 흙놀이는 두둑 만들기로 시작해서 미나리꽝 만들기로 이어졌다. 한 번의 불만족의 미나리꽝을 뒤로하고 새롭게 만든 미나리꽝이었다. 그리고 여름 장마가 지나고 가을에 다시 미나리꽝을 재손질해 주었었다.


봄날, 흙과 물이 만나서 빚어진 나의 예술적 체험은 내  정신으로 아지랑이처럼 스며들었었다. 사람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그 과정은 완성된 형태가 그동안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드러내는 그 순간에 폭발하는 것 같다.  그것은 흙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변형된 어떤 것이었다. 미나리꽝이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그 순간 어떤 것들이 내 안에서 서로  만났다. 그 만남의 느낌은 환희감으로 나에게 왔었다.

 

미나리꽝 만들기  체험에서 느낀 나의 예술적 체험은 어떤 하나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올해도 텃밭사유를 기록하려 한 것. 텃밭 가꾸기는 때로는 시간도 많이 들고 몸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신체사유에 적합한 놀이이자 취미이자 아비투스를 기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텃밭 가꾸기 역시 농사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농사와는 다르다. 정원과 텃밭이 결합된 형태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움직임을 통하여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한 사유를 글로 쓰려고 하지만 거기에는 지식적인 것과 정보전달 측면도 포함될 것이다.


___ 1. ______

그리스 어느 섬의 회반죽을 바른 건축물들처럼 미나리꽝을 다시 만들었다. 흙에 물을 괴어 반죽하여 진흙으로 만들었다. 흙은 물만 만나면 금세 부드러워져 매끄러워진다.


흙은 예상보다 더 단단하게 굳는다. 물기가 없는 땅을 파면 호미가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식물이 자라는 곳은 흙이 보슬보슬 부드럽다. 단단하게 뭉쳐 있는 흙은 물을 만나면 금세 부드러워진다. 물과 잘 섞여 밭 흙도 금세 찰기가 생긴다.


2022년에 만든 텃밭 두둑 형태와 미나리꽝


물을 주면 두둑 표면은 흙이 보슬보슬하여 물이 잘 스며들지만, 두둑의 측면은 물이 겉에만 묻고 그대로 흐른다. 두둑 측면에 물을 많이 주면 흙 표면이 쓸려 내려간다. 두둑 표면에서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더 두둑을 튼튼하게 하는 것 같다. 두둑의 측면은 축대 역할을 하여 물이 밖으로 새는 것을 방지하지만, 두둑 표면이 더 높으면 물이 측면으로 흘러내리면서 퇴비와 흙을 같이 침식하기도 한다.


두둑을 높게 쌓았을 때는 두둑 가장자리가 두둑 표면보다 더 높아야만 물이 밖으로 새지 않을 것 같다. 새로 묘목을 식목할 때처럼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봉긋한 두둑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___ 2. ___

1. 미나리꽝 만들기

미나리꽝 자리에 있던 통과 뽁뽁이 비닐을 다 꺼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땅을 되도록 깊게 팠다. 이미 물에 젖은 땅이라서 잘 파였다. 바닥에 돌을 평평하게 깔았다. 그리고 사각으로 형태를 잡고 벽 중간에 좁은 난간을 만들었다. 이 난간에 비닐을 걸치고 다시 그 위를 작은 돌로 빙 둘렀다.


___ 3. ____

2. 미나리꽝에 비닐을 깔다.

그 돌 위에 진흙을 올려서 형태를 잡고 벽을 만들었다. 돌을 한 층 더 쌓아야 했을까, 진흙이 조금 밑으로 흐르는 듯했다. 전체적으로 비닐장갑 낀 손으로 진흙 벽을 만져 주었다. 표면이 매끄러워졌다. 진흙을 위로 끌어올리듯이 몇 차례 만져주니 차츰 안정되었다.


___ 4. ___

3. 미나리꽝 만들기/ 비닐 고정하고 난간 둘러주기

진흙 벽이 밑으로 쳐진 이유는 흙에 물기가 많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있는 두둑의 흙이 물에 젖지 않아서 같이 밀착되는 힘이 약해서였을 수도 있다. 진흙 벽을 쌓은 방식은 이러하다. 사각 구덩이 중간의 난간에 올려 둔 돌 위에 1차로 진흙으로 벽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2차 진흙을 올리고 두둑과 나름 평행이 되도록 하였다. 남은 진흙으로 두둑의 흙과 맞물리도록 손으로 만져주었다.


___ 5. ___

4. 표면에 진흙을 덧대어 매끄럽게 다듬어 주었다.

미나리꽝 벽 미장은 흙을 진흙으로 만들어서 하니 저절로 되었다. 물론 물기가 마르면 다시 표면이 거칠어지겠지만 말이다. 무엇인가를 키우려고 만드는 행위가 갈수록 흙놀이로 가는 중이며 그 흙놀이는 고분을 만드는 느낌이다.


___ 6. ___

완성된 미나맄돵을 감상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예술적 체험이란 무엇인가...

텃밭에 산책 나온 분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해하며 묻고 간다. 미나리꽝 만든다고 하였다. 어떤 분들은 미나리꽝 만드는구나~ 하시고 지나간다. 헐~ 미나리만 보고도 다 아시는 탁월한 센스들이시다. 텃밭에 이제 어떤 정보들이 공유되는 분위기이다. 상추 밑동 떼 주는 게 좋다고 했다며 상추 수확하러 나오는 분위기 신선하다.


텃밭농장은 공공지라서 어떤 설치물 같은 것도 일정한 높이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나치면 그늘을 만들어 다른 농작물의 햇빛을 차단하게 된다. 또한, 텃밭 농장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미나리꽝을 통이나 비닐 상태로 두면 텃밭 미관에도 별로일 거 같고 우리 텃밭의 예술성을 깨뜨릴 거 같아서 이렇게 다시 미나리꽝을 만들었다.


___7.___

1차로 시도했었던 미나리꽝. 이때는 정말 그냡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다시 만들었다. 분화되기 이전의 덩어리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텃밭농장은 일상적이지만 미학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오며 가며 지나가는 곳이니 보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서 각자의 텃밭이 방치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각자 자기 농사만 잘 관리해도 텃밭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텃밭은 그 주인들의 관심을 반영한다. 농지 잘 정돈해서 제때 농작물만 맞춰 심고 물만 잘 주면 된다.


___8.___

2022년 가을, 장마가 지나간 후, 흙은 탄력을 많이 잃었다. 봄과 여름 장마를 거친 흙은 질감부터 다르다.

오후를 다 잡아먹는 작업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름 만족한다. 미나리꽝 앞에 공간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곳에도 미나리를 심었다. 아주 작은 그 공간은 밭처럼 이지만 논처럼 이기도 하다.



#미나리꽝다시만들다

#텃밭농장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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