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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래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차이적 차이

비극의 탄생/ 음악의 탄생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1장

by 아란도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제11장 p89~96





* 11장 문단은 제가 임의로 나누었으며, 내용을 부분 축약 및 편집하였으며, 단락에 제 생각을 달아두었습니다. 단락에 달지 않고 온 글로 쓰려고 했지만, 단락에 달아 놓는 것이 이해하기 더 쉬울 거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옮기면서 드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차후에 수정하기가 더 용이하기도 하고요.





니체는 11장과 12장에서 ‘에우리피데스’를 해체한다. 그리고 이 해체에는 ‘소크라테스’ 해체가 중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니체가 왜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를 ‘비극’을 죽인 원흉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니체는 설득력 있게 파고든다. 그리고 ‘비극’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밝힌다.

니체의 이 연구는 《비극의 탄생》에서 첫 번째로 또는 두 반째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비극’의 원형을 통해서 비극이 무엇인지를 밝혀낸 일도 첫 번째로 또는 두 번째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나로서는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비극의 원형을 통해서 비극이 무엇인지를 밝혀낸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원형은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감각하고 체험하도록 하며, 인간은 여전히 그 신체기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원형과 만나면 ‘어떤 효과’적인 것에 대해 지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인류가 일만 년 전이나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구조라는 것은 원형에 대한 접근에서 보자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니체는 인간은 과도기 상태라고 말했다. 즉 인간의 신체 형태에서 그렇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해 갈 수도 있을지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원형에 대해서도 낯설어질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의 원형이 아니라, 어떤 그 무엇의 원형일 뿐이니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나의 기억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그때에 그 기억은 그저 ‘어떤 기억’이 될 뿐이다. 인류가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면, 인류의 ‘원형’을 접할 때, 이와 유사한 시선이 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인간은 ‘원형’은 곧 그 자신들의 기억전승이어서 곧 집단 무의식 형태로 접속하게 된다. 니체는 이러한 관점에서 ‘디오니소스의 비극’에 대하여 밝혀내었고, 이제 비극의 3대 서정시인 중 하나인 ‘에우리피데스’와 동시대인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여 해체한다.






<고대 그리스 3대 서정시인>

고대 그리스 3대 시인은 시기별로 1)아이스킬로스(BC523~456), 2)소포클로스(BC497~406), 2)에우리피데스(BC480~406)가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의 선배였다. 소포클레스의 초반 작품에서 아이스킬로스를 본 땄다고 소포클레스가 말했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가 스승이라고 이야기한 내용도 있지만,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연령차는 있지만, 비극 축제 경연대회에서 서로 겨루는 사이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보다 앞선 세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소포클레스는 에우리피데스와 동시대인이지만, 가장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보다 더 늦게 태었났지만, 소포클레스와 거의 동시대에 서정 시인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소포클레스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소포클레스가 정통 ‘디오니소스적 비극’을 추구했다면,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적 비극’에서 어떤 변화를 꾀했다.


아마도 그 당시 시대상에서 보자면, 이미 아테네 사회에서 더 오래된 언어들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세대 차이에서 보자면 큰 차이는 아닐지라도, 벌써 에우리피데스가 그전 세대들의 비극 언어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보인다.


기원전 6세기와 기원전 5세기는 이미 어떤 차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니체는 바로 이 지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꾸준하게 고대의 언어가 회피되어 기원후 1세기~2세기가 되면 아이스킬로스의 언어는 조잡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인기 있는 극작가에서도 밀려나게 된다. ‘비극’ 전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단초를 니체는 에우리피데스로 보고 있다.


이때 아테네 사회는 참주정에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단계로 이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자면, 아테네 사회는 이성 중심 사회로 흐르고 있었고, 논리적인 소피스트 논법이 유행하고 있었던 시대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포클레스는 어쩌면 가장 ‘긍정적 염세주의’를 이해했던 비극 작가로 보인다. 아테네 사회에서 극작가는 대체로 극작가로 먹고살았던 것이 아니고 다른 직업이 있었다. 정치인, 사상가, 군인 등의 현업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정치적인 입장에 더 치중된 극장가들이었다. 그리고 소포클레스는 그러한 것을 비극에 잘 녹였다.









아이스킬로스



<아이스킬로스의 디오니소스적 연극 무대/ 혁신>

아이스킬로스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 대사 및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형태의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2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연극을 꾸려나가는 관례를 바꾸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아이스킬로스가 '합창단의 역할을 줄이고 줄거리를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안무가의 도움을 마다하고 합창단을 직접 훈련시켰으며, 합창단이 연기할 새로운 무용 스텝을 직접 고안하기까지 했다. 그는 당시의 극작가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관례에 따라, 대부분의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고 보인다. 그의 작품은 웅장하고 극적인 무대 효과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등장인물들을 운반하는 기묘한 방식, 〈에우메니데스〉에서 코를 골며 잠자는 복수의 여신들의 활인화에서 이국적이고 무시무시한 가면과 의상으로 유명했다.” <참고자료/나무 위키 부분 발췌 및 요약>





소포클레스



<소포클래스야말로 ‘긍적적 염세주의자’이자 ‘다음 인간형’>


* 아래 글은 소포클래스에 관한 자료를 ‘나무 위키’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포클래스에 대해서 정리한 심도 깊은 글이 마음에 들었다.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에 대해서 니체는 책 81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가의 지독한 자부심, 바로 이것이 아이스킬로스의 문학의 내용이자 진수다. 반면에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속에서 성자의 승전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그러나 이이스킬로스의 신화 해석으로 이 신화가 지닌 놀라운 공포가 다 측량된 것은 아니다.”

니체의 이러한 표현처럼, 소포클레스의 세계관은 과히 양자역학적인 세계관이라고 여겨진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에 다 속해 있다. 나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아래의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소포클래스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긍정적 염세주의자’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라고. 니체가 표상하는 다음 인간은 소포클래스 같은 인간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의 염원처럼 회귀하는 인간형은 ‘소포클래스’ 같은 유형의 예술가일 것이다. 아마도 이이스킬로스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소포클래스의 디오니소스적 연극 무대 혁신과 ‘비극’의 세계관>

소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아이스킬로스가 배우 1인을 추가하여 2인으로 만들고, 합창단을 12명으로 축소하였듯이, 배우 1인을 추가하여 3인 구성으로 하였고 합창단은 더 축소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비극 형식을 부분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응집력과 지속적 긴장감을 지닌 상황 속에서 다양한 성격묘사와 의미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1시간 남짓한 ‘복합극’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해마다 열리는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 상연할 희곡을 쓰고, 연극에 삽입할 ‘음악과 무용’을 고안하고, 그의 연극에 출연할 모든 배우와 합창단원들을 ‘지휘’하고 ‘훈련’시켰으며, 때로는 직접 역을 맡아 연극에 출연하면서 생애의 마지막까지 65년을 보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Poetics〉(BC 335경)에서 소포클레스를 다른 비극작가들보다 높이 평가하고 〈오이디푸스 왕〉을 그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이처럼 완벽한 형식 때문이었다.


<소포클레스가 쓴 비극의 주요 주제/시간과 고통 및 죽음>

소포클레스의 우주관은 다원적(신성, 시간, 자연, 필연성 같은 다양한 힘의 상호작용, 또는 다양한 힘 사이에 생기는 긴장관계)이며, 이 우주는 근대적 관점에서 보면 '신적’인 동시에 '자연적’이고, '비개인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다. 소포클레스가 쓴 비극의 주요 주제는 '시간과 고통 및 죽음’이다.

주인공은 줄거리 속에서 일찍 죽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죽은 뒤, 희곡의 대부분은 그 죽음이 등장인물을 어떻게 정당화했으며, 그것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또는 고통이 갑자기 출현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때까지의 사건전개와 동기의 뒤섞임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도 있다.

또는 불행하게 지속되다가 마침내 잔인하지만 꼭 필요하고 정당한 행동으로 끝나는 과정을 보여줄 수도 있다. 대다수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죽지만, 어떤 주인공들은 상징적으로 죽는다. 또는 상징적으로 죽는 동시에 육체적으로도 죽을 수 있다. 굴욕적으로 체면을 잃은 삶은 살 가치가 없어지지만, 자살을 통해 고귀해진다.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죽음’은 가장 의지가 확고한 등장인물의 예상도 초월하여 나타나는데, 이것은 진리와 보다 더 가깝게 접촉하여 ‘자아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방법에 있어서 죽음은 '삶의 포기'에 의해 더 진실한 인간, 보다 '더 본질적인 자아'를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아를 초월하여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증거'가 된다.

오이디푸스와 아이아스 및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은 ‘불의 시련’을 겪는 ‘인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불 속에서는 모든 점에서 더 커진 인물이 나온다. 불의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더 사납고 더 부드러우며, 더 강인하고 더 복잡하고 더 잔인하고 더 고귀해진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은 사실상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그들은 ‘신화적 자아가 된 것’이다.

신들은 영원한 힘과 현실의 구조를 구현한 화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이런 힘과 구조에서 차단되어 있고 시간과 변화 및 고통과 죽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무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의 질서와 확실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과 고통 및 죽음’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소포클레스가 쓴 비극의 주요 주제’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신화는 진리를 상징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 전체의 신화나 유형을 배우고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된다. 관객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만 특정한 등장인물은 그 신화적 유형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예언자들과 신탁은 모든 희곡에서 이 신화적 진실을 밝힌다. 우주의 작용은 그것의 신화적 유형과 동등하다. 소포클레스에게는 자유로운 결정과 우주의 필연성 사이에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신성한 사회적 진리가 참신함과 다양성 및 개성으로 인해 희미해지는 것을 보는 대신,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영원히 새로운 그 진리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그의 우주는 결국 인간을 배제하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다. 신이나 사실이 인간에게 아무리 이질적으로 여겨지고 잔인해 보일지라도, 그것의 진리는 인간 존재의 신비로운 책임을 가리키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몇 가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은 개인, 국내 관계, 정부와 사회, 그리고 우주의 전체 질서라는 유기적 통일체에 바탕을 둔 아테네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정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는 똑같이 타당한 수많은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대다수의 사람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항상 무지와 착각 및 어리석음과 충돌하는 진리를 제시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포클레스는 힘없는 사람들의 비참함과 전쟁의 공포, 노예 상태, 폭정 및 배신의 공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평화주의자나 노예 제도 폐지론자가 아니었고 급진적 민주주의자도 결코 아니었다.

그의 희곡에는 생각과 계획, 결정 및 의사 전달의 결점과 실수를 극화한 장면이 많다. 이것은 대중이 정책을 결정하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아테네 체제의 약점과 인간 지식의 한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포클레스는 힘없는 사람들의 비참함과 전쟁의 공포, 노예 상태, 폭정 및 배신의 공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평화주의자나 노예 제도 폐지론자가 아니었고 급진적 민주주의자도 결코 아니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과 ‘연민 및 동정’ 따위의 ‘사회적 미덕’은 그의 희곡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가치가 아니다. 그는 정치적 혁신을 통해 삶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의 우주와 그가 쓴 비극은 BC 5세기의 그리스 세계와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무자비한 권력투쟁, 인물과 국가의 예측할 수 없는 부침(浮沈), 그리고 행복은 논리적 계산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비영리적이고 종교적인 행사였지만 경쟁이 치열했다. 그가 쓴 비극은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일부 작품보다는 대중의 지지에 노골적으로 호소하지 않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오락적'일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교훈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예술로써 자연을 대체하거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 자신을 압도하는 우주적 질서의 산물로 여겼다. 그는 예언자나 신탁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뛰어넘는 ‘어떤 힘의 대변자’ 동시에 극작 기법에 관한 이론적 논문까지 쓴 ‘자유롭고 자율적인 대변자’였다. 그 ‘힘’은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표현하는 복잡하고 율동적이며 건축학적인 구조를 가진 언어로 표현되었다.

시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개념에서 인간과 우주는 상호 의존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진리의 영역 속에서 살 수 있고,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여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자아를 지적할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소포클레스의 마지막 활동은 BC 406년에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리기 전에 죽은 경쟁자 ‘에우리피데스의 공개 장례식’에서 합창단을 지휘한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소포클레스다운 일이었다. 소포클레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시극에서 이룩한 업적만이 아니라 시극 자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그의 희곡들은 우주의 신성에 경의를 표한다. 극작가로서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종교(그리고 특히 디오니소스 숭배)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가 평생 동안 종교의식에 헌신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를 기리는 신전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의 희곡들은 인간의 정의 및 미덕과 신의 관계가 갖는 모든 다의성을 극화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는 근대 용어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고대 그리스 고유의 ‘포괄적 종교’에 몰두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영원한 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그 힘 앞에 굴복하지는 않았다.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신비주의자도 아닌 소포클레스는 아테네라는 지역에 한정된 ‘자신의 삶 전체’로 ‘신성’을 인정했다. 그는 초자연적인 미지의 힘을 자신의 질서 정연한 우주 속에 받아들였다. 그는 이따금 완전하고 숭고한 조화를 낳는 삶과 죽음의 뒤틀린 엇갈림에 경의를 표했다. 숙명론자도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모든 것을 체념하지도 않았던 그는 잔인한 필연성 속에서 인간의 성취를 발견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드러나 있는 인간은 고대인과 현대인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인상적으로 풍부하게 집대성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의 희곡은 그가 ‘본래 긍정적인 인물’이라는 전통적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희곡의 줄거리에는 ‘완전한 고통과 절망이 드러나 있어서, 그가 '정통파'라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악덕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한 개인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평정'하다면, 그것은 죽음과 고통이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실제로 직면한 뒤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평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책 11장 본문 요약 및 편집>


에우리피데스에 대해서 후대 그리스인들은 열광했고, 향후 ‘디오니소스적 비극’의 형태는 사라지고, 그리스 연극, 즉 ‘아티케 희극’의 형태로 발전했다. 연극의 원형은 ‘디오니소스 비극’이지만, 그 원형은 사멸하고 에우리피데스적인 희극의 형태가 주류가 된 것이었다.

니체는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디오니소스적 비극’이 죽었다고 본다. 왜 그러한지 니체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한다.






에우리피데스



<두 사람의 관객 중에서 첫 번째 관객 -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에우리피데스 이전에 ‘프로메테우스적 비극 작가’들이 어떤 소재를 가지고 주인공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적 비극 작가들은, 현실의 충실한 가면을 무대 위에 올리겠다는 에우리피데스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에우리피데스의 경향’이 ‘프로메테우스적 비극 작가들’과는 전적으로 달랐다는 점은 분명하다. *프로메테우스적 비극 작가는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를 지칭한다. 어떤 소재는 신화적 소재이고, 그 신화적 소재의 내용들은 모두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의 변형이다. 반면 에우리피데스는 현실적인 것들을 소재로 사용하였고, 등장인물들도 노예, 잔혹한 여성, 잔인한 남성들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물론 고귀한 인물의 여성과 남성도 있었다.


일상 속의 관객이 에우리피데스로 인해 관객석에서 무대 위로 떠밀려 나온 것이며, 예전에는 위대하고 대담한 윤곽선들만 표현했던 ‘거울’이 이제 당혹스러울 만큼 충실하게 자연의 실패한 선들까지 그대로 ‘반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분신을 보았고, 그의 말을 들었으며, 그의 달변에 기뻐했다. 사람들은 에우리피데스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웠고, 그 스스로도 아이스킬로스와의 시합에서 이 점을 자랑하고 있다. *니체가 에우리피데스의 합창단을 이야기할 때, ‘관객을 합창단’으로 만들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사용한 말이다. 그 당시에 에우리피데스의 희극 내용에 소피스트적인 수사법이 많이 들어가 있었고, 시민들이 그 말을 연설에 많이 인용하여 실제로 유명해진 대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니체는 어쩌면 그런 지점들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한 자기 덕분에 이제 백성들이 예술적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빈틈없는 소피스트 논법으로 관찰하고 변론하고 추론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러한 공용어의 급격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희극’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어떤 식으로, 어떤 격언들로 일상생활이 무대 위에서 표현될지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극에서는 반신半神이 무대 위의 언어적 특성을 규정했다. 즉 희극에서 술 취한 사티로스나 반신이 언어적 특성을 규정했다면, 에우리피데스에게서는 ‘시민적 범용성’이 발언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파네스’가 <개구리들>에서 묘사한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익히 잘 알려진 일상생활과 활동을 자신이 어떻게 묘사했는지 강조하면서 자화자찬하고 있다. *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디오니소스였다. 그리고 사티로스로 화한 그 반신이 무대의 언어를 규정하였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일반 시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무대 위에서 사용하였나 보다.


이제 대중 전체가 철학을 하고, 전에 없던 ‘명랑함’으로 나라와 재산을 다스리고 재판을 진행한다면,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공적이고 그가 국민에게 심어준 지혜의 성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희극의 대상’은 이런 식으로 ‘계몽되고 준비된 대중’이 될 수 있었다. * 여기서의 명랑함은 77쪽에서 다룬 ‘맹점 현상’ 즉 치유로서의 명랑성과는 다른 개념의 명랑성이다. 기원전 6세기의 명랑성과 기원전 5세기의 에우리피데스의 명랑성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니체는 노년의 그리스 사회를 고대 사회와 구분한다. 여기서 노년의 그리스 사회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 후 그리스 사회를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관객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의 이 ‘새로운 희극’의 합창 선생은 에우리피데스 자신이었다. 이 합창단이 에우리피데스의 음조로 노래 연습을 하자마자, 체스 게임과 같은 연극은 ‘영리함과 교활함’이 영원히 승리하는 새로운 희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합창 선생인 에우리피데스는 끝없이 칭송을 받는다. 단지 비극과 함께 비극 작가들도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에우리피데스에게 더 배우겠다고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도 나왔을 것이다. 비극의 종말과 함께 그리스인은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도 포기했다. 이상적 과거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이상적 미래에 대한 믿음까지도 말이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극은 현실주의이며,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보다는 순간의 괘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니체는 고대 비극이 ‘영원’이라면 에우리피데스의 희극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늙으면 경박스럽다”라는 유명한 묘비명의 구절은 ‘노년의 그리스 정신’에도 해당된다. 찰나, 기지, 경박함, 변덕은 그들이 최고로 숭배한 시였다. 적어도 ‘정신적 태도’를 보면, ‘제5신분’인 노예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 노년의 그리스적 명랑성>

노년의 그리스적 명랑성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어려운 것을 책임지지 않고, 원대한 꿈을 추구하지 않으며, 지나간 것이나 미래에 올 것을 현재 있는 것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는 노예들의 명랑성인 것이다. “그리스적 명랑성”이라는 허상이 기독교 초기 400여 년 동안 ‘신에 대한 외경심’에 가득 차 있던 명상적인 교인들을 그토록 격분시켰던 바로 그 장본인이다. 그들은 진지함과 공포심 앞에서, 여자처럼 도망 다니는 태도, 편안한 안락에 자족하는 비겁함을 경멸의 눈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참으로 반기독교적인 자세라 여겼다. *그리스적 명랑성에 대해 니체는 기원전 6세기의 명랑성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떤 명랑성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현재의 그리스의 명랑성은 어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이 머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조르바는 호메로스적 명랑성이라고 보인다.


* 그리스의 명랑성의 계보/ 호메로스적 명랑성은 아폴론적 환영에 의한 신들의 세계의 실존으로부터 오는 절도의 명랑성 -> 디오니소스적 도취 + 아폴론적 환영 =>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명랑성 ->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이 명랑성을 이어받음 -> 소포클레스에게서 염세주의적 명랑성(평상심)의 완성 -> 에우리피데스에게서 아폴론적 명랑성만 부각되는데, 이는 아폴론적 환영보다는 현실 중심주의에서 오는 명랑성 -> 소크라테스 주의와 결합하여 왜곡된 아폴론주의로 흐름, 아폴론적 미학만 부각하다 보니 오히려 아폴론도 죽음 -> 소크라테스적 로고스적 명랑성이 그리스에 번짐. 니체가 말하는 본래의 그리스적 명랑성은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명랑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에우리피데스 당시의 명랑성은 변질되고 왜곡된 명랑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조르바’의 명랑성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조르바의 명랑성은 그 특성상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명랑성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주인공 버질에게서 아폴론적 환영이 투사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 두 사람을 관통하는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열정에 의하여 디오니소스적 명랑성과 아폴론적 환영은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적 명랑성'이 된다. 자연의 실패한 선들은 감춰지고 아름다운 환영이 두 사람을 감싼다. 그 둘은 '춤'으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버질은 그 힘으로 삶을 계속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극을 탄생’시키고, ‘비밀 의식’이나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배출한 기원전 6세기가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평가일 뿐이다. 또한 저 위대한 시대의 예술 작품이 없었다는 듯한 태도다.

이러한 태도는 모두 ‘삶에 대한 쾌락과 명랑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노인이나 노예에게 어울릴법한 태도를 근거로 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은 존재 근거로서 전혀 다른 세계관을 지시하고 있다. *‘삶에 대한 쾌락과 명랑성’은 ‘젊은’ 자유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그들이 연극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처음으로 그리고 진정하게 키워주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마치 이전의 ‘비극’은 관객에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예술작품과 관중들 사이의 적합한 관계를 세우고자 했던 에우리피데스의 ‘과격한 경향’이 소포클레스를 넘어서는 진보라고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중’이란 하나의 말에 불과하며, 동질적이고 고정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니체는 지금 에우리피데스가 퇴보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니체는 에우리피데스가 반시대적인 극작가라고 여길 것이다. 에우리피데스 입장에서 보면 그 자신이 시대적이라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두 명의 관객'은 누구인가>

수적인 면에서만 ‘강한 하나의 힘’에 ‘예술가가 적응해야만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재능과 목적에서 이 개개인의 청중들보다 월등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그가 자신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청중 전체의 집단적인 표현을 비교적 높은 능력을 지닌 청중 개개인보다 더 존중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 예술가 가운데 진실로 에우리피데스만큼 일생 동안 그토록 대담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청중을 대한 사람은 없다. 이 천재가 ‘청중이라는 악령’ 앞에 눈곱만큼의 경외심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생애의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실패로 인한 타격으로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집단의 무의식은 실로 강력한 것이다.

정반대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가 생전과 사후에도 국민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에우리피데스의 전임자들의 경우 예술 작품과 청중 간의 불화를 거론할 수는 없다.

이렇게 숙고해 볼 때, 에우리피데스가 청중의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 그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는 말은 단지 잠정적인 평가에 불과할 뿐이다. 에우리피데스의 경향을 좀 더 심도 있게 살피려면, 그 경향을 이해할 수 방도를 더 찾아야만 한다.


중단 없이 창작에 몰두했던 넘치는 재능을 지닌 예술가를 구름 한 점 없는 민중의 총애의 하늘 아래 펼쳐져 있는 길, 위대한 시인의 명성이라는 태양이 빛나고 있는 길에서 ‘이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던가?

도대체 그는 관객을 향해 어떤 기이한 생각을 품고 다가갔는가? 관객을 너무 존중한 나머지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에우리피데스는 시인으로서 대중 위에 있다고 느꼈겠지만, 자신의 청중들 가운데 ‘두 사람’보다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에우리피데스는 청중 또는 대중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


이것이 방금 서술한 수수께끼의 해답이다. 그는 무대 위로 대중을 불러왔지만, 그 두 명의 관객만이 자신의 모든 예술을 판단할 수 있는 재판관이며, 거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지시와 경고에 따라 그는 그때까지 ‘공연 때마다 보이지 않는 합창단’ 즉 관객석 위에 나타났던 감정, 정열, 심적 상태를 무대 위 주인공들의 영혼 속으로 옮겨놓았다.


그가 이 새로운 성격들을 위해 새로운 말과 새로운 어조를 찾았던 것도 그 ‘두 사람의 요구’에 응한 결과였다. 그가 ‘청중의 법정’에서 다시 한번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그는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에서만 자신의 창작품에 대한 타당한 판결이나 승리를 기약하는 격려를 들을 수 있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은 연극의 진행 단계를 서곡 형태로 낭독을 통하여 미리 알려준다고 한다. 연극이 특별한 형태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며, 극적인 효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절정으로 치닫는 것만 관객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데우스 액스 마키나(기계신). 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 모든 연극이 집중되어 있어서 인위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그리고 관객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이 두 명의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에우리피데스 본인’이었다.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상가’로서 말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이런 재능 즉 ‘비판적 사유의 기민성과 명증성’을 가지고 극장에 앉아있다. 그는 마치 빛바랜 그림에서 획 하나하나, 선 하나하나를 알아내려는 듯이 선구자들의 걸작품들을 재인식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기원전 6세기를 이해하지 못한 에우리피데스/ 디오니소스적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바로 여기서 알아낸 것은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깊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기대해 볼 만한 것이었다. 그는 획 하나마다, 선 하나마다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기만적인 명확성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도무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무한한 배경이었다. 가장 분명한 듯한 인물조차 불가해한 것, 불확실한 것을 암시하는 듯한 혜성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투명한 안개가 연극의 구성, 특히 ‘합창단의 의미’ 위에도 짙게 깔려 있었다.


윤리적 문제들의 해답은 그에게 얼마나 의심스러웠던가! 신화를 취급하는 방법 또한 얼마나 의문점이 많았던가! 행복과 불행의 분배는 또 얼마나 불공정하게 보였던가! * 고대 비극은 디오니소스적 광기와 아폴론의 꿈의 환영이 결합된 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적 광기와 도취를 이해하지 못하니 그 지점이 모호하게 엉켜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에우리피데스에게는 아폴론적인 경향만 부각될 뿐이고, 그런데 그 마저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부분이 간과되었던 것은 아닐까.


‘고대 비극의 언어’조차 그에게는 여러 면에서 불쾌했거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그는 ‘단순한 사태’를 너무 과장되게 표현하고 ‘소박한 성격’을 지나친 비유와 터무니없는 말로 묘사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불안하게 골똘히 생각하면서 극장에 앉아 관객으로서 자신은 이 위대한 선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 에우리피데스는 고대 비극에 내재한 심오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면에 희극의 형식은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처럼 변형을 꾀했다. 깊이가 사라진 피상적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한편으론 에우리피데스에게서 나는 요즘의 우리 시대를 더 많이 본다. 우리 역시 고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불과 100년 전의 일도 우리는 잘 모른다. 에우리피데스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가 바로 앞선 세대이고 소포클레스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에우리피데스에게는 고대 비극이 그렇게 이해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아마도 그 자신의 사유 방식이 현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음악보다는 언어 중심이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것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니체가 비판하는 지점은 아마도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의 전통을 존중하지 않았고, 거장들의 발자취를 제대로 좇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니체는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유사한 말을 하고 있다. 천재나 거장들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태도들에 대해 니체는 모독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과 같은 사람은 분명 희귀하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그들의 삶을 이해했고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영원히 사는 그들을 니체는 외경감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오성이 모든 감성과 창작의 원초적 근원이라고 생각한다면, 혹시 자신처럼 생각하는 사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물어보아야 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리고 몇몇 뛰어난 인물들도 그것을 보고 미심쩍은 듯한 미소만을 흘릴 뿐이었다. 왜 그의 우려와 항의가 부당하고 저 위대한 거장들이 옳은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경시했던 ‘다른 관객’을 발견했다. * 니체는 에우리피데스가 그 자신의 감각으로 얻는 정보를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그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숨겼다. 에우리피데스가 그 자신만의 고통 속에서 다른 길을 찾았다고 니체는 말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두 번째 관객을 발견한다. 아마도 아이스킬로스는 두 번째 배우를 도입하였는데, 에우리피데스는 두 번째 관객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한 발견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과 단합하면서 그는 비로소 고립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에우리피데스는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 대해 과감한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서를 통해 반론을 펼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극관’을 전통적인 것과 ‘대립’시키는 극작가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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