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2장
“그 병은 어디에서 고대에 가장 아름답게 자라난 존재인 플라톤에게로 옮겨왔는가? 사악한 소크라테스가 그마저도 타락시켰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야말로 청년들을 타락시킨 자가 아닐까? 그 스스로 독배를 받을 만했던 것은 아닐까? <인용/ 니체 『선악의 저편』 김정현 역(책세상, 2016), <서문> p11 5절>
* 누스nous/ 이성, 지성, 정신, 영혼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세계는 누스가 지배하고 있어, 인간은 누스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로티노스는 만물은 1자로부터 유출한 누스의 기능에 의한다고 했다. 스토아학파에서는 로고스와 거의 동의로 이용된다.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에서는, 이 말로부터 파생한 '누메논' (noumenon, 생각할 수 있던 것)이라는 말이 '물자체'와 동의로 이용된다. <출처/위키백과>
* 오르페우스Orpheus/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려오지 못하고, 결국 혼자 지상으로 나온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찾아오는 다른 여자들의 구혼을 모두 거절하며 슬퍼하기만 하다가 그만 분노를 사서 몰매를 맞고 죽임을 당한다. 일부 판본에선 이 여자들이 디오니소스 의식으로 인해 광기에 찬 여자들인 '바카이(Bacchai)'였다고 묘사한다.
여자들이 돌을 던졌는데,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자 비껴가거나 도중에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여자들은 악을 쓰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서 리라 연주를 무효화시키고 돌팔이로 몰매를 해서 죽였다. 죽은 뒤에도 시체를 능욕당해 리라와 함께 강에 버려지고 말았다. 잘린 그의 머리는 오랜 기간 동안 신탁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시체는 오르페우스의 누이들인 오이아그리데스와 뮤즈들이 수습했다. 당연히 자신의 신도들이 대형사고를 쳤다는 사실에 분노한 디오니소스는 오르페우스를 죽인 여자들을 전부 나무로 만들어 버리는 벌을 내린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10권에서는 그가 사후에 낙원인 엘리시온에서 에우리디케와 재회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별자리가 되어 리라(Lyra) 자리가 되었다고 하고 오르페우스는 천국 엘리시온에서 신들을 위해 리라를 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 - 나무위키 (namu.wiki)
<오르페우스 밀교>
오르페우스는 단순히 신화 속 영웅은 아니었다. 사람이 죽은 후 모든 장래를 극복하고 천상으로 오르는 법을 알아냈다고 해서 ‘오르페우스 종교’가 생겼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제자와 추종자들이 보존해 전해 내려온 성서에는 태초에 ‘밤의 신 닉스’가 있었다. 닉스는 우주의 알을 만들어내었다. 그 알이 둘로 갈라져 하늘과 땅이 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원전 8~5세기경 창시되었으며, 미트라교의 영향을 받았다. 오르페우스가 명계를 다녀오고 죽은 사람을 살릴 뻔했다는 것에 주목해 그를 섬기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오르페우스와 함께 명계를 다녀간 신인 페르세포네와 디오니소스 역시 같이 숭배했다. 이들은 디오니소스 탄생 설화인 ‘자그레우스 설화’ 속 티탄의 잔인함과, ‘아기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티탄과 같은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억제하여 ‘영혼의 구원’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다른 ‘그리스 신화나 종교’와 다르게 ‘사후세계를 신앙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우스가 티탄을 번개로 살해한 뒤 프로메테우스가 티탄의 재와 디오니소스의 재로 인간을 만들 때, 티탄의 폭력성과 디오니소스의 원초적 순수함이 합쳐져 인간이 태어났다. 디오니소스적 영혼이 ‘신성성과 불멸성’을 가져 인간의 영혼은 기본적으로 불멸한다고 본다.
티탄의 재로부터 만들어진 육체는 영혼을 구속해 인간의 <원죄>에 의해 슬픔의 고리인 윤회와 전생을 반복한다. 이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슬픔의 고리’로부터 벗어나 ‘영혼이 구원’ 받으면 신들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오르페우스교의 목적이 되었다. 이것은 오르페우스교만의 특징적인 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밀교들과 구분되는 것은, 이들이 ‘파피루스나 황금판에 그들의 교리를 적은 문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리에서 보이듯 ‘영혼의 정화’와 ‘디오니소스의 숭배’에 열성적이었다.
학자들 중에는 이들의 인간의 ‘원죄 개념’과 ‘영혼의 구원’ 등의 교리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오르페우스 - 나무위키 (namu.wiki)
니체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상 속의 인간이 그로 인해 관객석에서 무대 위로 떠밀려 나온 것이며, 예전에는 위대하고 대담한 윤곽들만 표현했던 ‘거울’이 이제 당혹스러울 만큼 충실하게 자연의 ‘실패한 선들’까지 그대로 ‘반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