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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Apr 27. 2024

창의는 어른들로부터 2

2024  이웃텃밭 풍경/ 도시 농업


텃밭을 일부러 시간 내어 둘러보았다. 꽃들과 돌들과 소품들이 어우러져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듯이 다가온다. 텃밭에 태양열 조명기구가 등장했다. 이제는 밤에 보아야 이쁜 텃밭으로도 변모했다. 식물에 조명이 있으면 안 좋다고도 하지만, 밤 산책에는 나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통 텃밭에 밤에는 잘 가지 않고 우리만 늦게 가서 살펴보곤 했는데, 이제는 누구나 그렇게들 하는 것 같다. 모두 자기 시간에 맞춰 텃밭을 가꾸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열 조명기구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본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 텃밭을 해본다고 하는 어떤 이웃 텃밭 팀은 돌들을 모아서 밤 11시까지 작업했다고 한다. 이제 텃밭에는 돌이 귀한 몸이다. 돌 사용을 잘하여 돌의 느낌이 바위와 산의 느낌이 났다. 그 아래에서 거대한 바위산을 올려다보는 상상을 하게 된다.  바위와 이끼류가 잘 어울렸다. 앉아서 휴식할 수 있는 의자도 세 개를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텃밭에서 하나의 큰 두둑을 정원으로 할애하여 휴식과 감상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통 큰 텃밭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작물 재배와 사람의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텃밭이었다.


그녀는 내가 텃밭 가꾸는 것을 보고 텃밭을 해보고 싶었다고 하였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시간들이 그렇게 스며들고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작가님이라고 불러서 한 번은 왜 나에게 작가님이라고 부르냐고 물어보았다.


텃밭대장님이 나에게 동화작가라고 했다고 하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텃밭을 꾸미니까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다고 말했다. 글은 쓰지만 동화를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 어떤 글을 쓰느냐고 그녀는 물었다.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미 정의해 둔 바가 있지만 공개한 적은 없다. 그것은 다음에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관련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장 사실에 근거한 답변이었다. 그런데도 과연 내 글이 어느 한쪽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긴 하였다.


그럼 차도 마시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말했다. 텃밭에서 저녁 무렵에 더 따뜻해지면 티타임을 갖자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텃밭에 앉아서 예전에는 삼겹살 파티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꿈을 못 이뤘지만, 티타임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끊었다고 한 그녀와 그녀의 친구와 티타임 텃밭이 가능한 시간이 만들어 지길 기대해 본다.


여러 이웃 텃밭 중에서도 헌옥 샘의 텃밭은 당연 질서 정연하다. 이번에 정돈된 텃밭을 보고서 나는 부촌의 럭셔리 빌라 같아요~라고 말했다. 단차 정원 쪽에서 보면 한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돌하르방도 보이고 제주도 대문도 보인다. 한쪽에는 보랏빛 꽃이 매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허나 하나 섬세하게 손길이 미친 곳은 모두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심어 놓은 콩과 싹튼 시금치와 잘 자라고 있는 상추와 꽃들이 정렬해 있는 단정한 텃밭을 감상하며, 이 앞에 벤치가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헌옥 샘과 나는 텃밭이 정한 규정을 넘어서지 않는다. 높은 지지대가 필요한 넝쿨 식물은 심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헌옥샘은 식물들 키를 키우지 않을 궁리를 하고 나는 심지 않을 생각이다. 토마토도 올해는 키를 늘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허브를 올해 다시 심기로 했었다. 식물들 키가 크면 이웃 텃밭들에 그늘이 생긴다. 그러면 서로 그늘을 만들어 서로에게 피해가 된다. 그리고 식물들 키에 가려 다른 텃밭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또한 넝쿨 식물 지지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 텃밭이 금세 흐트러진다. 도시농업은 미학을 포기할 수 없고, 농업의 전반적인 추세가 주변 정돈도 해가면서 식물을 가꾸자일 것이다.


꽃 정원이 될 테라스가 있는 텃밭에 텃밭대장님과 그녀들이 앉아 있었다. 멀리서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서로 인사만 나누고 나는 저쪽에 보이는 텃밭으로 항하였다. 오늘은 우리 텃밭 가기 전에 다른 텃밭들을 둘러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뒤편 쪽은 텃밭에 물 배수가 원활하지 않았었는가 보다. 대대적인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텃밭 앞에 새로 꽃밭을 조성하였는데, 그녀들이 했다고 한다. 새로 조성된 꽃밭인 일정한 비율로 꽃들을 나눠 심었고, 바위산과 파랑새들도 있었다. 이끼류도 멋스럽게 깔려 있었다. 암탉도 있었다. 낮 달맞이꽃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내가 심어 놓기로 하였다. 낮 달맞이꽃은 꽃이 가을까지 피면서도 그 군락진 모습이 어여쁘다. 올해는 텃밭에서 낮 달맞이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텃밭에 포인트들이 보여서 사진 찍었다. 그렇게 작게 형태를 만들어 놓은 모습들은 직접 보면 정말 앙증맞게 이쁘다. 유년의 동심이 절로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소박한 풍경이 참으로 정겹다. 하지만 이제 텃밭은 소박함 보다는 디자인 발현으로 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박함은 화려함이라는 정점을 찍고서 다시 디자인적 형태로 드러날 때에만 소박함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소박함은 언제든지 사라질 상태에 있다. 그 또는 그녀가 어떤 자극에 의해 변모되면 그 또는 그녀는 그들의 감성을 발현하는 쪽으로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와 정원 그 사이에서 아직은 농사로 보는 쪽은 그 자신의 노동력을 농사로만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농사로 본다고 하여도 그게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농사와 정원의 공존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실험을 해볼 장소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창의를 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농사와 정원의 공존이 가장 대표적인 모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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