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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Apr 27. 2024

시간랜드를 만들다. 창의는 어른들로부터 3

2024 시간정원 파트 3


'시간랜드'를 만들었다. 시간정원이니 당근 시간랜드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물의 현재와 미래는 시간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공룡은 어떨까? 요정은 또 어떨까? 그 사이 어드메쯤에 인간이 있다. 나의 현재는 늘 무엇인가를 만들 때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오히려 미래가 있었고 또한 기억이 있었다.


작년 텃밭의 사진이 페북 '과거의 오늘'에 뜬다. 작년의 텃밭 사진을 바라보면서 저 흙과 싸우면서 이겨내며 공존한 시간들을 본다. 작년에 흙과 대적하며 이긴 만큼 올해의 흙은 부드러웠다. 흙이 변화된다는 것을 이 년 연속으로 같은 공간을 향유하면서 더 자각하게 된다. 아니면 내가 이 공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확실히 흙이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이 텃밭을 감상하면서 묻는다. 작년에도 이곳에서 했었지요? 라며 묻는다. 거의 대다수는 긍정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떤 의구심을 채워주길 기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방편으로 말을 하게 된다.


첫째로, 제가 이쁘게 가꾸어서 이곳에서 다시 하게 된 거예요. 둘째로 땅두릅을 심어 놓아서 그렇다고 말할 때도 있다. 셋째로 텃밭 형태를 돌담으로 잡아놔서 그 상태가 이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대화가 더 이어지면 이렇게 말한다. 텃밭은 어느 곳이나 그 사람이 하기 나름이어서 다 원래대로 되돌아가버립니다. 제가 여기서 하지 않으면, 아마도. 맨 처음 상태로 이 공간이 되돌아가 버릴 거예요. 이곳도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으니까요. 어긴 길목인데 사람들이 오며 가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더 좋지 않겠어요. 가꾸어진 공간들 보며 웃으며 지나가시라고 여기서 다시 하게 된 것일 겁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모두 수긍하시곤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늘 텃밭을 지나가며 보고 가신다고 말씀들을 해 주셨다. 그러니 더 이상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시간 투여를 한 것이라고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더는 묻지 말고 감상을 하시고 이 앞을 지날 때 즐거운 마음으로 지나가시길 바라본다. 그런데 대체로 즐겁게 지나가는 모습들이어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 텃밭 주인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으셔서 말을 걸어오면 대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보면 텃밭에서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며칠간 텃밭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코감기가 왔다. 나는 내가 봄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국 코감기였다. 이제 거의 작업이 마무리되었으니 쉬엄쉬엄 텃밭 산책하며 상추가 크기만 기다리면 된다.


흙이 부드러워진 만큼 사럼들의 표정과 말도 부드러워진 것 같다. 텃밭을 대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는 분명 예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오늘은 대각선으로 이웃 텃밭 분과 텃밭에서 마주쳤다. 지난번에 상추를 이웃텃밭 샘께  받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늦은 밤에 도착해서 상추를 그때서야 심었다. 상추에 물기가 있었고 싱싱했다. 그래서 상추가 다 잘 산 것 같다. 대각선 이웃 텃밭 분께서 오후에 상추를 보시고는 시들해져서 모종판에 물을 주고 가셨다고 한다. 어쩐지 오전에 받아 놓은 상추가 이리 물기가 있을 리는 없을 텐데 했었다. 덕분에 상추가 잘 살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오늘 내가 만든 '시간랜드'를 보시고는 여기다 미니 다육 화분을 가져다 놓고 싶어 하셨다. 그러시라고 했는데,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으신 것 같았다. 간혹 아파트 앞에 햇볕 쬐려고 내놓으면 들고 가 버리기도 하신다고. 그래서 나는 예전에는 그런 일들도 있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텃밭에서도 신뢰가 없으면 안 되니까 점차로 신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작정 신뢰만 의지할 것은 아니다.


누구나 보라고 텃밭에 그 자신의 무엇인가를 내놓은 것인 만큼 그것이 관리되고 있다는 의지도 함께 내보여야 한다. 시간랜드를 만들면서 어찌 보면 하찮은 미니어처 소품들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떤 형태에 맞춰 디자인되어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바람에 날려가거나 흐트러지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본드를 발라서 고정했고, 스테인 철사줄로 한 곳에 매어 놓았다. 물론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오고 가는 사람들 시선을 감당할 만큼의 단단함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자고 밖에 내놓은 것인 만큼 이 지체에 대한 그 자신의 신뢰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텃밭을 가꾸는 것은 이러한 것들을 이겨내는 용기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육을 텃밭에서 햇볕 쪼여줄 용기, 그 자신이 가진 무엇인가를 내보일 용기, 함께 어울릴 용기... 이러한 것들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운 발로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망설임 그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신뢰에 대한 책임 역시 그 자신의 몫이긴 하다. 어른들의 창의를 가로막는 망설임은 일상성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요즘 텃밭은 그 자신들의 실내 정원과 그 자신들의 이상이 결합한 형태라고 보인다. 이러한 구현이 그 자신들의 세계를 다듬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현된 다듬어짐이 오히려 신뢰를 생성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짜로 감상을 하게 되며 어떤 것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함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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