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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l 22. 2024

텃밭은 생산력의 장소이다

2024 텃밭 정원 사유/ 06,26 여름의 기억


텃밭은 집과 그 구조가 같다. 텃밭의 생산력은 곧 그 자신의 생산력으로 연동된다. 집은 며칠만 지나면 청소해야 한다. 흐트러진 것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어수선한 것을 정돈해 줄 때 삶은 정돈된다.


텃밭정원은 며칠만 지나면 잡풀이 자라고 식물들 역시 자라고 또 자란다. 자란 채소들을 따내고 곁가지들을 잘라주어야 한다. 그렇게 텃밭은 정돈된 모습일 때 편안한 아름다움을 준다.


집의 풍경이 흐트러지고 텃밭이 흐트러지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생산이다. 흐트러진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오히려 생산력이다. 세상은 저절로 시간이 지나면 흐트러진다.


집은 사람이 움직이면서 또 바깥의 공기가 들어와 먼지를 만든다. 생활하다 보면 빨랫거리도 생기고 여러 물건들도 제자리를 이탈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청소하는 것은 곧 생산력이다. 집을 정돈하고 가꾸는 것은 생산 그 쟈체이다. 집은 그대로 놔두면 계속 흐트러질 뿐이지 더 정돈되지는 않는다. 집은 생산을 통해서만 쾌적한 공간의 현상유지라는 지속력을 갖는다.


텃밭 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상태는 계속 자라서 우거지고 그 상태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우거진 채로 시들고 말라서 부러지든가 그대로 서서히 썩거나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다시 그 위에 초록이 무성해지는 것의 반복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축적이다. 축적을 통하여 자연은 생명 그 자체의 현상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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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은 다 '집'의 형태이다. 집은 청소하고 가꿀 때 현상유지가 된다. 간헐적으로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할 때만 현상은 유지될 수 있다.


텃밭 정원 역시 그렇다. 자연이 키우는 것에 맞춰 간헐적으로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생산력이다. 행위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인간은 이미 생산자다. 그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기 에너지를 사용할 때만 생산력은 증가한다.


그리고 이 행위의 1차 생산물은 가공되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2차 가공, 3차 가공, 4차 가공, 5차 가공, 6차 가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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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에 적용해 본다면,

텃밭에 상추 씨 뿌리면(1차) - 상추가 자라면 상추 따기(2차) - 상추를 먹기(3차) - 상추로 김치 만들기(가공/4차) - 상추 김치 사진 찍기(5차) - 상추김치 활용하기/ 플러팅 등등(6차)


다시 확대하여 적용하면,

상추 심기(1차) - 상추밭 가꾸기(2차) -  상추밭 사진 찍기(3차) - 상추사진 sns에 올리기(4차) - 상추에 관한 자기 생각 글쓰기(5차) - 창작 글과 사진 활용하기(6차)


이것을 더 확장하면,

텃밭 형태 만들기(1차) - 텃밭에 창작물 넣기(2차) - 창작물 안에 식물 투입하기 (3차) - 텃밭 꾸미기(4차) - 텃밭 즐기기/감상(5차) - 텃밭 사유(6차)


이것을 다시 재 적용하면,

인간의 반복적 움직임(1차) - 인간의 특정한 행위(2차/사진 찍기) - 사진을 인화 즉 sns에 올리기(3차) - 이러한 행위를 기록하기/글쓰기(4차) - 이러한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내기(5차) - 창작물을 세상에 적용하기(6차)


이것은 다시 가공하면,

창작물(1차) - 그 어떤 것에 대한 생각/사유(2차) - 그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쓰기(3차)  - 그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쓴 그것을 활용하기/일상의 것들에 접목하기(5차) - 이것이 이것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글쓰기/종합(6차)


뒤로 갈수록 더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활용한다. 그런데 이 뒤로 갈수록 나타나는 것들이 원래는 인간이 본래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더 본질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의 2차적인 행위에 기반한다. 그러므로 생산력을 증대시킬 그 무엇, 대상이든 공간이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찾아서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스스로 존재가치를 느낀다. 곧 자긍심을 스스로 장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행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행위하지 않거나, 생활의 단계에서만 행위하게 된다. 생산력을 증대시킬만한 물리적 토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증대는 어떻게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 변화는 곧 가공이다. 자연의 가공은 본질적으로 지속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공은 단절이다. 기존의 차원을 결별하고 차원을 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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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가 자기 본체에서 떨어질 때에만 우리는 상추를 식탁에 올릴 수 있다. 또한 상추가 식탁에서 멀어질 때에만 그 자신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입과 떨어져야만 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위장과 멀어질 때에만 전체로 퍼질 수 있다. 그리고 대장과 멀어져야만 밖으로 배출될 수 있다. 상추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날 먹은 상추는 그 자신이 움직이는 행위의 운동에너지로 변했고, 이미 운동에너지로 변한 상추는 차를 우릴 때 써버렸을 수도 있고 텃밭 가꾸기에 써버렸을 수도 있고, 무심코 왔다갔다한 걸음걸이에 써버렸을 수도 있다. 상추는 어디로 갔을까?


상추는 변화하여 어딘가로 침투되어 있다. 변화되는 것의 최종적인 것은 운동에너지다. 이 운동에너지로 변화하여 다시 자연 안으로 침투된 것이다. 침투된 에너지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침투된 에너지 그 자체는 고정되어 있다. 찻잔을 여기서 저기로 옮겼다면 그 찻잔은 거기에 그대로 있다. 찻잔을 옮겨야 한다면 또 운동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고정된 형태 그 자체가 운동에너지의 흔적이다.


우리는 이 흔적을 통하여 어떤 단서를 추적한다. 흔적은 고정되어 있고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래서 흔적이다. 흔적으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고 그곳에 머물면서 운동에너지의 이동 경로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접속하는 우리의 방식도 이러할 것이다.


과거는 기억이다. 기억은 흔적이다. 흔적은 고정되어 있다. 거기에 그대로 있다. 운동에너지의 결과가 흔적이다. 고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기억에 접속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기에 그것을 재구성할 수 있다. 거기에 있기에 퍼내도 계속 무엇인가는 생성된다. 역사에 접속하는 형태는 바로 해석인 이유가 그러하다. 이미 에너지가 투여된 결과로써의 역사는 흔적으로 그곳에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은 니체의 철학책을 읽으면서 고려시대 차문화를 정리하던 중에 들었던 어느 날의 단상이다. 그것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나는 나의 에너지를 모으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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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그동안 텃밭 수확물로 만들어 먹었던 것들

* 내가 어떤 것 또는 장소에 대해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생산력이기 때문이다. 곧 나를 기록하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나의 생각을 기록한 것. 그러므로 여가서 나는 그 세계의 '나'이기도 하다.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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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장마 전의 채소들/상추류/루꼴라/허브-딜/ 미나리/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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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텃밭(E 팀)에서 직접 만든 식빵. 상추와 땅두릅,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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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갓과 청경채를 넣고 볶은 두루치기. 시금치 된장국, 채소 샌드위치와 잠봉뵈르. 채소를 넣어 만들어 먹은 음식들과 상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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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브를 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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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골드 & 허브 & 사과 식초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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