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낀 그 맑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그 감정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서 세련됨을 느꼈기에 우리는 좋았던 것이다.
양푼에 한가득 나온 해물 칼국수를 먹고 백사장으로 나가서 바닷물을 보았다. 가을바람이 부는 해변가, 자주 지나쳤지만 해변가로 내려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집에 없으면 이 근처 카페에 있는 줄 알아"
"어떻게 여기에 오려고?"
"버스가 있잖아!"
"한 달 살 거야?
"응!"
하지만 한 번도 버스 타고 나홀로 바닷가 카페에 가서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온 적은 없다. 로망으로 남아 있고, 이런 순간에 나는 즐겨 그런 말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텃밭 와인 시음 행사에서 시음 후 가볍게 마실 와인을 두 병 샀는데, 어머니 앞에 풀어놓았다. 어머니, 와인 처음 드셔 보신다. 핏줄로 따지자면 어머니께서는 술을 못 드시는 체질은 아닐 것이다. 다만 사람들과 어울려 계모임 가고 놀러 다닐 때, 사람들이 술 많이 마시는 게 보기가 싫어서 안 드셨다고.
" 어머니는 술 드실 수 있어요. 와인 한 잔은 괜찮으세요"
각 잔에 술을 따른 후 저녁 만찬 건배를 하였다.
내가 마시려고 놓아둔 와인을 이틀 저녁에 한 병씩 모두 풀었다. 술 권하는 며느리가 된 셈이다. 소화도 잘 되었고, 와인은 부드럽게 그렇게 우리 안으로 사라졌다.
가을빛은 어떤 아련함이 있다. 아련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일렁인다. 나는 요즘 갑자기 목뼈가 뻐근하여 거의 누워서 폰으로 글을 쓴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잠이 안 와서 밤새 폰으로 글을 만지작 거렸다. 오히려 목뼈에는 안 좋은 행동만 하고 있다.
이제 그 많은 글을 다 폰으로 쓰던 버릇을 지양하고 긴 글을 쓸 때 노트북에서 쓰는 방식으로 다시 그렇게 습관을 들여야겠다. 이렇게 등을 기대고 누워 있으면, 눈과 귀로는 영화를 보고, 손으로는 글을 쓰고, 또 한쪽 귀로는 유튜브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배경 음악인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그 안으로 내 마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 여러 가지가 다 들릴 때도 있다. 이것은 습관에 배인 기계적인 움직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 사이에서 내가 찾아내야 할 것이나 또는 써야 할 것들은 쓰게 된다. 내 안에서는 자기만의 무엇인가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어 보이는 그 습관에서 오히려 나는 많은 것을 정돈한다. 왜냐하면 내 몸은 등을 기대고 있어서 한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을빛 그 아련한 것들에 대해서 내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