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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Sep 07. 2023

무용無用한 것들

무용한 저곳을 통과하여 불어오는 가을바람



부드러워진 오후의 햇살

매달린 채 흔들리는 소라껍데기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잘 안나는 풍경

흙이 아닌 물속에서 뿌리를 확장하는 카랑코에

이제는 직화 유리주전자 역할을 할 수 없는 내열 유리주전자

와인을 거치하고 있지 않은 와인렉

지붕 위에서 내려와 장식이 된 기와

더 이상 바다와 접촉하지 못하는 바닷가의 돌

안방에서 나와 창가에 선 화장대

선반이 되지 못하고 유리 위에서 받침이 된 나무판자 불이 켜진 지 오래인 양초

양초와 향을 피어 본 지 오래인 연꽃 향받침


향도 꽂을 수 있는 다화꽂이에는 카랑코에가 햇볕과 바람을 타고 증발된 수분을 무던히도 견디며 오늘은 찰랑거리는 물을 머금으며 자라고 있다


바람, 꽃, 식물, 도자기, 소라껍데기, 풍경, 유리 테이블, 와인렉, 기와, 유리주전자, 양초, 향초받침, 다화꽂이, 돌... 무용의 한복판에서 인간을 가장 크게 이해하는 것들...... 그대로 놓아둔 무용한 것들


그곳을 통하여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 사진 :  '무용한 공간'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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