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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Jan 18. 2022

모터사이클 잡지 기자 생활의 시작

비즈니스와 일의 간극

문득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비즈니스란 쉽게 말해 일입니다. 노동이라는 의미의 워크보다는 좀 더 체계적인 '업무'를 뜻합니다. 뭐, 제가 대강 내린 정의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을 비즈니스와 취미 사이에서 방황해 온 사람입니다. 아니, 사실은 둘이 정확하게 교합되는 삶을 살았다고 믿어왔습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물네 살의 어렸던 저에게 매우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 졸업 신 연설문을 통해서 말입니다. "인생의 60퍼센트 이상을 일하는 데 보내는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반드시 찾아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제 나름의 해석이기도 하지만 의미는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면, 인생을 바쳐서라도 그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고 전언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당시 이미 매우 좋아하는 일이 있었고, 그것은 모터사이클에 대한 탐구활동이었습니다. 방학 숙제 같은 이름으로 묘사했지만, 말 그대로 탐구활동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모터사이클은 물론 이거니와, 비슷한 종류의 모터사이클이나 갖고 싶은 모터사이클에 대해 인터넷의 망망대해를 향해 헤엄치며 정보를 찾아 헤매는 일,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며 알아가는 일은 정말이지 신세계였습니다. 그만큼 그 일 자체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어느 싸이월드 미니홈피 영상 탭에서 보게 된 저는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 시간부로 논리 정연하게 직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이크.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 그러면 둘을 합치면? 모터사이클에 대한 글 쓰기. 그런 직업이라면... 모터사이클 잡지 기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시 한국에 있던 전 모터사이클 잡지에 메일과 전화를 이용해 연락했습니다. '거기서 잡지 기자 일을 하고 싶은데, 자리가 있을까요? 혹시 자리게 생기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아마 2007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회신이 온 곳에 면접 기회를 얻었고, 포트폴리오라 하기는 부끄럽지만 내가 타고 있던 스즈키 밴디트 400 시승기를 한글 15페이지 정도 정성껏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호응을 얻어, 바로 다음날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잡지 편집부 기자로서 첫 출근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면접 담당자의 "본인 타고 있는 바이크 시승기 맞죠? 지금 바로 출판해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네요. 너무 훌륭해서 놀랐어요"의 말은 처음 시승기를 남에게 보여준 나로서는 희열 그 자체였습니다.


이때부터 1년여간 정말 신나게 일했습니다. 그 사이 인생에 파장을 줬던 무거운 사고도 있었습니다. 투어 중 친한 형을 먼저 보낸 일입니다. 바로 눈앞이었고 당시로서 꽤 절친이었기 때문에 어린 저로서 충격은 무척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잡담하며 숨 쉬던 그를 만 3일 만에 한 줌의 뜨거운 뼛가루로 쥐어 날려 보내는 순간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관점이 매우 현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카티 슈퍼바이크인 848이라는 고급 모터사이클을 시승하라는 오더가 떨어졌고, 며칠 전 비슷한 모양의 바이크를 타고 사고가 났던 장면이 겹치지만 '일'이기에 해야 했던 당시의 고뇌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스물다섯이란 어린 나이였고, 눈 내리던 날 시승하고 카메라 앞에서 태연히 소감을 말하며 웃음 지어야 했던 스스로에게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며칠밤을 소리 내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첫 기자생활은 1년이 정확히 지난 시점에 회사의 도산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애초에 회사가 아닌 '업'을 보고 입문했던 저로서는 그만둘 수 없었고, 연락처를 알고 있던 다른 잡지사의 영업부장님에게 연락을 시도했고, 곧바로 면접, 그리고 이튿날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쉴 새도 없었고 쉬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취미를 일로 삼게 된 첫 1년을 그렇게 황망한 사건들로 보내고, 동시에 일로서는 더욱 도전하고 싶은 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일이 힘들다는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일 자체가 놀이였고, 늘 새로웠으며, 즐거웠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일에 미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달 새로운 모터사이클을 만나고, 소개하고, 타보고, 원고를 쓰고, 마감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거친 뒤 만나보는 반짝거리는 새 책은 보람의 산물 그 자체였습니다. 기사마다 내 이름이 적힌 것이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일에 푹 빠져 몇 년이 지나자 그동안 미뤄왔던 인생의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입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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