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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Jun 23. 2022

다시, 글쟁이

미디어 판으로 복귀

결국 마흔의 나이에 새롭게 도전한 세일즈 판에서 나는 물러났다.

물론 일 자체는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과의 관계 문제가 컸다. 내가 40년간 살아오면서 본 적없는 사람들과 동료애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하루하루 버티고 버텼지만 상처 구덩이가 커지고 커지면서 간신히 매달려 있는데, 위에서 찍고, 아래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팀 내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 발로 나오게 됐다.


마찰이 있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출근 길이,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장소가 끔찍해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하는 일이었다. 사직서를 쓰는 날부터 오히려 생각은 굳건해졌다. 그래서 마지막 날까지 잘 털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발걸음이었다. 인생의 반 정도 살아온 지금 시점에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몇 번 시도했고, 실패했고, 실패했고, 또 실패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가 두려워졌다.


잘 하던 것을 하는가, 새로운 도전을 또 다시 하는가의 물음은 아직까지도 여전하다. 하지만 내가 꿈꿀 수 있는 창의력의 한계는 점점 줄어들었다. 움츠려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미디어 판을 되돌아 보게 됐다. 적어도 거기서는 욕 먹고 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존중받고, 성취하며 일했다. 다만 그것이 매너리즘으로 바뀌어 성장이 멈추었고, 지루해지고, 정신적으로 멍멍해졌기 때문에 떠났던 것이다. 그런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니 싱숭생숭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을 쓰는 일은 아니다. 미디어 판도 많이 바뀌어, 이제는 글이 아닌 영상으로 컨텐츠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력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요즘 유튜브는 하나하나가 방송국에서 만든것처럼 찰지다. 컨텐츠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여기에 도전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글로, 사진으로 표현했던 구성을 영상에 담아야 하기에 시작이 쉬울 뿐이다.


지금 여기 글을 쓰는 것도 글 쓰는 것이 역시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말보다 글이 편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동요였던 것 같다. 이제는 누구나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누구나 컨텐츠 제작자이며 누구나 시청자이다. TV수신료 대신 구독료를 낸다. 


물론 나는 아직 월급쟁이지만, 적어도 그 무게감은 느껴진다. 컨텐츠 전문가로서의 성공은 더욱 좁은 길이 됐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해야한다. 무게감을 견뎌야 한다. 간만에 내리는 우장창 쏟아지는 빗줄기, 천막 가운데 장작불을 피자 연기가 매콤하다. 이렇게 습한 공기에 불을 피려니 장작이 더욱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아 안쓰럽다. 내 모습이 꼭 저렇다.

글쟁이가 되고싶다. 다시.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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