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로 우리의 여름 휴가는 끝이 났다.
오늘부터 일주일 뒤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일하게 된다.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지만, 걱정 해 뭐하겠는가. 그냥 덤덤하게 출근하기로 했다. 이렇게 나는 다시 미디어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 주, 대표(우리 사장님 될 분)와 두 번째 미팅으로 7월 1일부로 입사를 확정지었지만 아직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왠일인지 출근하고나서 작성하자 한다. 번복할 일은 없을 것이라 하니 믿고 미팅을 마쳤다.
그 사이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난 15년간 몸 담아온 미디어와 달리 이제는 완전히 영상 컨텐츠 100퍼센트로 굴러가는 미디어에 몸을 담게 됐다. 따라서 이제 돈 받고 글 쓰는일은 없다. 사진 찍는 것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일이 없다. 글 쓰기는 스크립트(대본) 제작 정도에 도움될 것이고, 나머지는 영상에 출연해 진행하거나 좀 더 좋은 아이디어로 기획하는 일에 내 연봉이 책정될 것이다. 미디어이긴 한데 내가 겪어온 미디어와는 많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 일했던 미디어도 영상 컨텐츠로 갈아타는 과도기를 겪었지만 그래도 텍스트 기반의 전통적인 매거진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도 동시에 했었기 때문에 적응기가 길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바뀐 컨텐츠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읽고 쓰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여기 빈 칸을 활자로 채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시대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일련의 취미나 특기 활동으로 남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문체를 경험하며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 왔지만 텍스트가 가진 역할이나 힘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본다. 하지만 영상 컨텐츠에 비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진 것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돈을 벌려면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오히려 대세를 리드하는 자가 가장 큰 돈을 벌게 되고, 대세를 따르는 자는 먹고살만큼의 돈을 벌게 된다. 대세를 거스르는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주 번뜩이는 아이디어 없이는 먹고 사는 것조차 불분명하게 된다.
내가 추구해 온 인생속의 장인 정신같은 것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낭만적일 뿐이다. 숫자와 지표 속의 세상에서 오직 남은 것은 계산과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돈이 되지 못할 지언정, 읽고 쓰는 것을 계속해야만 한다. 일과 돈을 분리할 때가 온 것이다. 비로소.
미안합니다. 스티브 잡스. 당신의 말을 더 이상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20년 만에 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