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글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1.
모든 글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묻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결정적 질문이 글의 주제가 된다. 읽을 때도 물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질문이다. 사람은 묻는 만큼 생각한다.
2.
직장에서 쓰는 보고서는 내가 아는 것,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게 아니다. 상사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답해야 한다.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무슨 문제 없어?”, “어떻게 해결해야 해?”, “좋은 생각 없어?”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게 보고서다. 사실 칼럼이나 소설, 개인적인 글도 모두 그렇다. 독자는 글을 읽다가 더는 궁금하지 않으면 읽기를 그만둔다. 글에서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별것 아니다. 알고 싶은 욕구의 충족이다.
3.
직장생활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 문제의 제기와 분석과 해결이다. 제기를 잘하면 까칠한 사람이 되고, 분석을 잘하면 똑똑한 사람이 되고, 해결을 잘하면 유능한 사람이 된다.
4.
쓰기는 대상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쓰려면 우선 이해해야 한다. 이해의 대상에는 처지, 사정 같은 이성 영역과 심정, 마음 같은 감성 영역이 있다. 이 둘을 이해한 상태를 ‘공감’이라고 한다. 사람, 사물, 사건, 삶에 공감하는 정도, 정서적 감응력이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시인은 ‘대추 한 알’과 ‘연탄재’에 공감한다. 소설가는 ‘성웅 이순신’이나 ‘82년생 김지영’이 되기도 한다.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대상에 빙의해야 한다. 독자를 대신해 어떤 대상이 되어 쓰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5.
나아가 공부한 것을 자기화하는 과정을 밟는다. 머리에 입력했다고 다 자기 것이 아니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사유와 사색, 비판과 반론이다. 공부한 내용을 연결, 결합, 융합해보는 사유와 사색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공부한 내용을 반론, 비판, 반박, 비평해봐야 한다. 요약하는 건 기본이고, 요약한 내용을 평가하기까지 해야 자신의 의견, 생각이 된다. 칼럼 한 꼭지를 읽으면 자기 생각을 한 줄이라도 정리하고, 강의 30분을 들으면 자기 의견을 한마디라도 건져 올려야 한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을 챙겨야 한다.
6.
나는 회사에서 보고서 쓸 때 이 네 가지 방법을 잘 써먹었다. 우선 선배들이 써놓은 것을 찾아봤다. 주로 중간제목을 봤다. 그동안 회사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의 중간제목을 모두 망라해서 한 데 모았다. 글을 쓸 때마다 그중 몇 가지를 골라 조합했다. 글의 구성을 모방한 셈이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배경, 취지, 현황, 원인, 대책, 해법, 기대효과, 실행계획 등의 중간제목을 많이 알고 있다. 소설가는 살인, 탈옥, 추적, 역전, 구출, 갈등, 복수 같은 중간제목, 다시 말해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개념어를 많이 갖고 있다. 글쓰기는 이런 소재를 모아서 주제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여럿이 모여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7.
글쓰기는 생각 쓰기다. 좋은 재료가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고, 좋은 자재가 없으면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없다. 멋진 춤을 추려면 흥이 넘쳐야 하듯, 좋은 글을 쓰려면 생각이 흘러넘쳐야 한다.
8.
두 분은 자신의 경험에 늘 의미를 부여했다. 경험하며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았는지 생각했다. 연설문, 기고문 실마리도 자신의 경험에서 찾았다. 어느 단체에 가서 연설해야 한다면 그 단체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 그 단체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곱씹었다. 그것이 연설문이 되었다.
9.
바쁜 세상이다. 내가 상사로 모셨던 어떤 분은 한 장이 넘는 보고서는 아예 받지를 않았다. 보고도 1분 이내에 하길 원했다. 짧게 보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그 내용에 자신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확실히 알고, 확신이 있으면 짧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짧게 설명하려면 사전에 충분히 정리해봐야 한다. 설명은 간결함을 요구받는다.
10.
강의 실력은 크게 네 단계로 진화한다. 의식의 발전 단계와 비슷하다.
첫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는 단계다. 형편없이 강의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못하는지 모른다.
둘째 단계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는 단계다. 쭈뼛쭈뼛하고 위축되어 있다. 듣는 사람이 조마조마하다. 셋째 단계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듣는 사람이 편안하지 않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보여 부담스럽다.
넷째 단계는 의식하지 않고도 무심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다. 능력이 몸에 배어 자연스럽다. 내가 이르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다.
11.
발표 준비 다섯 단계 나는 보통 다섯 단계를 거쳐 발표를 준비한다.
첫째 단계에서는 발표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쏟아낸다. 빈 종이에 굵은 사인펜으로 끄적거려보거나 노트북 키보드를 마구 쳐댄다. 이때는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질보다 양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쏟아낸 양이 부족하면 자료를 찾아 내용을 늘린다.
둘째 단계에서는 옥석을 가린다. 앞 단계에서 쏟아놓은 내용 중 쓸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버릴 내용을 솎아내는 것이다. 누구나 알 법한 내용, 주제와 거리가 있는 내용,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자신 없는 내용 등을 솎아낸다.
셋째 단계에서는 덩어리로 묶는다. 앞 단계에서 살아남은 것을 비슷한 내용끼리 묶는다. 건축에 비유하면 기둥을 세우는 단계다. 길게 발표할 때는 기둥 수를 늘려야 하고, 짧게 발표할 때는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단계에서는 스토리라인을 만든다. 앞 단계에서 범주화한 덩어리를 배열하는 작업이다. 발표의 이정표를 세우면서 지도를 그린다. 이정표는 묶어놓은 덩어리들의 제목이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다. 나는 발표의 승부처가 세 요소, 즉 스토리라인, 시각자료, 질의응답에 있다고 보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라인이다. 나는 파워포인트 같은 발표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머릿속에 저장된 얘기가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작위적인 느낌이 덜하다. 현장 분위기에 맞춰 빼야 할 것은 빼고 깊게 들어가야 할 것은 파고든다. 발표하면서 스토리라인에 없는 더 좋은 얘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발표용 프로그램을 쓰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어 이런 게 가능하지 않다.
다섯째 단계는 실전훈련이다. 걸으면서, 운전하면서 시간만 나면 머릿속으로 말해본다. 아내 앞에서 큰 소리로 마치 실전처럼 말해보기도 한다. 그래야 발표 내용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있고, 입에 딱 달라붙는다.
12.
하고 싶은 말은 열정과 사색에서 나온다. 듣고 싶은 말은 배려와 공감에서 찾아진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의 균형을 잘 맞춘다.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으면 꼰대가 될 수 있고, 듣고 싶은 말만 잔뜩 하면 알맹이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연설은 이 두 가지 말을 조합하는 예술이다.
13.
좋은 첫 문장은 책을 집어 들게 하고, 좋은 끝 문장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14.
말실수도 습관이다. 입에 배면 고치기 힘들다. 방심하는 순간 찾아온다. 입을 열기 전에 생각해보자. ‘내가 이 말을 꼭 해야 하나?’, ‘해야 한다면 때와 장소는 적당한가?’, ‘내 말로 상처받는 사람은 없을까?’ 백 마디 잘해 얻는 이득보다 한마디 잘못해 잃는 손해가 더 크다. 패가망신할 수 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말은 안 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