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깊이에 도달해놓고선 그것이 바다의 깊이라고 우겨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1. 현재는 과거보다 낫다. 현실성은 과거의 그 무엇보다도 더 낫다. 과거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미련한 짓일 뿐이다. 아무리 올바른 소리, 혹은 진리라 해도 그것은 과거의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카뮈는 갈릴레이의 선택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갈릴레이는 중요한 과학적 진리를 알아냈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아주 쉽게 그 진리를 포기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잘한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할 만큼 진리가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존의 문제는 삶의 문제이다. 가치나 진리 같은 것은 삶 자체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고행하듯이 하라고 일렀다. 반복해서 읽으라고 권했다. 그것도 강한 인내심으로 견뎌내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 고행이다. 고행을 통해 이러한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겪어보게 하려는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을 깨닫게 한 후 그 결과 인식이 변하게 되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과정이 힘들수록 결과에 대한 감동은 그만큼 커진다. 고통은 힘들다. 하지만 깨달음은 그 고행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고통과 직면하는 고행이 없는 깨달음은 없다. 염세주의 철학은 인식의 단계에 다가서기 위한 전제로서 고통에 직면하게 한다. 고통에 대한 인식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구원의 조건이다.
3. 우리 인생의 광경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는 거친 모자이크 그림들과 같다. 그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아야 한다. 조금 전엔 하나의 점에 불과한 인생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번엔 인생이 모자이크 그림과 같으니 멀리 떨어져서 보라고 한다. 사물이 눈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인생의 모든 개별적인 광경들은 모자이크의 조각들과 같다. 조각 하나하나는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투박하게 잘려나간 조각들에서 실망과 좌절만을 느낄 뿐이다. 모자이크 그림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 그림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인생에 얽매이지 말고 멀리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을 달관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인생이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가 되어야 인생이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인생에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멀리 두어야 한다.
4. 고뇌는 천재가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난 천재가 아니야!’라는 말로 상황을 피해가려 하지 말자. 천재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인 고뇌에서 보편적인 고뇌로 넘어갈 때까지 고뇌와 직면해보는 것이다. 인생이 허무한 것처럼 고뇌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생의 깊은 곳에는 영원의 샘이 있듯이 고뇌의 이면에는 영원에 이르게 하는 길이 숨겨져 있고 위대한 일을 하게 하는 기회가 스며 있다. 고뇌를 피하면 영원 또한 피해갈 것이다. 고뇌를 모르면 영원의 샘물이 주는 인생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5. 인간의 삶으로 바꿔 설명하면 시간과 도덕, 이성에 얽매여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바뀌는 유행을 따라가느라 온 열정을 다 허비한다. 평생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돌볼 시간은 없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썩어가는 가련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인생론》에서 하는 말의 핵심이다. 삶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주어진 기회이다. 삶을 잘 이용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바다의 바닥을 재는 측심연이 얼마나 깊은 곳까지 도달했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깊이에 도달해놓고선 그것이 바다의 깊이라고 우겨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