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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by 김알옹

김영하 작가님의 산문집. 전에 알쓸신잡에 출연하셨을 때 모습이 워낙 젊어 보여서 기껏해야 50대 초반 정도 되셨겠거니 했는데 3년 후에 환갑인 68년생이시다. 이러면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김영하 작가님의 <검은꽃>은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한국 현대 장편소설을 꼽으라면 바로 답이 튀어나오는 작품이다. 작가님이 예전에 쓰신 다른 소설들도 꽤나 많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과격한 주제와 필체에 놀란 경험이 종종 있다. 방송에서 멀끔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모습은 나이가 들면서 좀 둥글둥글해지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을까 아님 방송용 이미지였을까.


원래 에세이를 잘 안 읽는 내 독서 스타일 상 작가님의 예전 에세이도 읽지 않아서 소설이 아닌 다른 글은 어떻게 쓰시는지 잘 몰랐는데, 글 스타일이 뭔가 브런치에서 글 잘 쓰는 분들의 그것이라 작가님이 브런치를 읽는 기분이었다. 부모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서 진솔하고 내밀한 자기 고백을 듣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에는 우리가 평소 살면서 느끼는 삶에 대한 애매한 감정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한 단락들이 많다. 민완의 작가가 자기 삶을 돌이켜보며 '인생 사용', '두 번은 못 쓸 글'이라고 할 정도로 지혜와 깨달음을 담아 쓴 글이라 그런지 곰곰이 되새김질해 볼 만한 문장들이 많다. 좋은 문장은 쉽게 읽힌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무슨 이유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영원히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남아 있는 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바로 그런 상태로 우리는 닥쳐오는 인생의 무수한 이벤트를 겪어나가야 하고 그리하여 삶은 죽음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부조리로 남아 있게 된다. 이 부조리에다 끝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비밀들, 생각지도 않은 계기에 누설되고야 마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비밀들까지 더해진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몇 년 뒤에 읽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은 책이다.




뭐든지 시작하면 10년은 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브런치에 10년 동안 쓰면 저런 좋은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다운로드.jpg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추천한 김은성 작가님의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만화가 완성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정을 흔드는 작품이라고... (출처: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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