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신용목, 조해진, 반수연, 안보윤, 강태식, 이승은
김승옥문학상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발표된 단편소설 가운데 등단 후 10년 이상이 된 작가들의 작품을 후보작으로 뽑는다. 그래서인지 다른 문학상 작품집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내용의 소설들이 많아서 읽기 좋다. 항상 새로운 시각만 충전하다 보면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조경란 <그들>
교수 임용을 약속받았다가 배신당한 남자가 배신한 교수의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무언의 압박 목적으로 계속 방문하며 생기는 일들. 그 둘이 살짝 스파크가 튀는 듯하나 기실 아무것도 아니다. 베테랑 작가님이 이것저것 다양한 소재를 다 잘 살려서 짧은 소설 안에 담아주셨다.
신용목 <양치기들의 협동조합>
작가님은 시인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이렇게 길고 난해한 글을 쓰실 수 있는 분이 시라는 짧은 글귀에 이 많은 생각을 다 담으실 수 있다니 그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다만 서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이 맴도는 소설을 난 제대로 읽을 자신이 없어 한 페이지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 작가님의 시 한 편을 남긴다.
<저녁에>
사선(斜線)으로 떨어지는 저녁, 옆구리에 볕의 장대를 걸치고
새가 운다
저녁 하늘은, 어둠을 가둔 볕의 철창
저녁 새소리는,
허공에 무수히 매달린 자물통을 따느라
열쇠꾸러미 짤랑대는 소리
저녁 감나무에, 장대높이로 넘어가는 달
해 지기 전 지평선에 걸친 볕은 비스듬히 떨어지며 그 따뜻함을 잃는다. 거기에서 '옆구리에 볕의 장대를 걸치고'라는 마법 같은 표현을 쓰시다니. 누군가는 시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그 쉼표와 줄 바꿈과 공백 하나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시를 천천히 곱씹고, 누군가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단어와 문장과 단락과 페이지들을 마구 먹어댄다. 난 후자에 속하고, 전자가 될 자신도 없고 뜻도 아직 없다. (밥 먹을 땐 천천히 & 많이 먹는다) 아마 눈이 더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날이 가까워지면 그땐 시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
조혜진 <내일의 송이에게>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쓰인 소설. 희생자나 생존자의 이야기가 아닌, 안산에 살던 아이들이 1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난한 아이들에게 항상 생기는 일이 침체된 지역 분위기 안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작품집은 매 작품 말미에 심사평(평론)과 작가 인터뷰를 넣어줘서 작품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작가님은 실제로 강지나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도 참고하셨다고 한다.
반수연 <조각들>
아내를 잃고 딸을 데리고 캐나다로 무작정 이민을 떠나 목수 생활을 시작한 아버지. 소설은 20년 후 딸의 이사를 도우려 딸과 함께 밴쿠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떠나는 로드트립의 길을 따라간다. 딸은 성장하며 어떻게 부모와 멀어지는지, 아버지는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앵글로색슨족들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잡은 동양인이 당하는 차별과 함께 잘 보여준다. 캐나다에 이민 가서 잘 살고 있는 친구 생각도 나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영화 생각도 났다.
안보윤 <그날의 정모>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음. 다시 읽어도 저 할머니는 정말 표독스러운 사람이다.
강태식 <그래도 이 밤은>
트럭 운전사로 평생을 살아온 행크(!)가 중년이 된 아들 브라이언의 불륜 광경을 목격하고 이를 미행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어릴 때 집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브라이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독자 해석에 따른다. 한국인이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을 쓰다니 신선했다.
이승은 <조각들>
영화 <기생충>의 오마쥬인가. 영화보다는 덜 잔혹하고 교양 있는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