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성 바람이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바람 속엔 녹슨 파이프 조각과 먼지, 오래된 머신에 쓰이는 오일류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 거대한 쓰레기 무덤이 되어버린 아르키 행성. 아르키메데스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인공지능 이전 멀고 먼 시대로 부력의 원리, 크레인, 지레의 원리 등 수학적 모델을 추구하던 사람으로 지금의 발전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적 규칙이 행성의 역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여 짓게된 이름.
이들 다시 초기로 돌아간 폐기물에서 그 바탕의 실체적 의미를 찾는 것. 이곳은 인류가 남긴 온갖 우주 폐기물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금속성 대륙이었다. 행성의 크기는 지구의 약 1.3배, 자전주기 36시간, 공전주기 524일, 중력 0.92배. 지구와는 가볍지만 인간 생활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다.
기후와 대기는 표면온도는 최대 85도, 밤은 –45도. 질소 56% 메탄 24% 산소 15% 기타 중금속 미세입자 다수.
이런 상태라 인간이 외부 활동을 하기엔 불완전한 수준으로 기본 방진복 및 산소 보조 장치를 필수로 하고 있었다. 그 외 강한 금속성 먼지 폭풍이 주 1~2회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나는 이곳에서 살아왔다. 아니, 살아남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삶과 생존은 종종 같은 단어처럼 쓰이지만, 사실 그 둘 사이엔 끝도 없이 넓은 틈이 있다. 숨을 쉬는 것과, 의미를 갖고 존재하는 것 사이에 놓인 그 틈에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테오(Theo)“
질리(Jilly)의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들려왔다.
매끄럽고 명랑한 인사였지만, 이곳의 아침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질리는 늘 같은 톤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좋기는.
나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대꾸했다.
"어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도 말할 거야.
이 친구는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인간이든 머신이든, 이 행성엔 더 이상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기록보존부 우주선이 파츠를 회수하러 오긴 하지만, 그들은 나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나는 폐기물 관리자로, 질리는 내 인공지능 로봇으로, 그렇게 7년을 살아왔다.
"오늘 기온은 57도에서 80도까지 오를 예정입니다."
질리는 날씨 정보를 전해주며 내 뒤를 따라왔다. 기온이라는 개념도 이곳에선 우스웠다. 폐기물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독성가스 탓에 체감 온도는 최고온도 20도인 화성 표면보다 더 뜨거웠고, 밤이면 급격히 식어 –40 ~ 50도에 이르러,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살아있는 생명이란, 이런 환경에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폐기물 산을 넘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거대한 금속의 바다였다. 부서진 우주선 동체, 불에 탄 드론, 잘려나간 로봇 팔, 이름 모를 장치와 파이프들이 해일처럼 넘실거렸고 나는 낡은 고철 사이를 걸으며, 질리와 함께 오늘의 작업의 손을 맞춘다.
"쓰레기 같은 세상이야."
나는 주먹만 한 철조각을 집어 들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여기 있습니다."
질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갈 수 없으니까."
질리는 입을 다물었다.
가끔 그 애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침묵을 흘렸다.
나는 부서진 안테나 조각을 뽑아 올리며 생각했다. 여긴 우주의 종말선 같은 곳이다. 탐험과 개발의 시대가 끝난 뒤, 문명의 잔해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살아있는 별에서 쓸모를 다한 물건들, 폐기된 실험체들, 버려진 기록들. 우주의 끝자락에서 나는 그것들을 선별하고, 분류하고, 쓸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쓸모를 잃은 인간이, 쓸모를 잃은 물건들 사이에서 쓸모를 찾는 기묘한 풍경.
"오늘은 뭐가 나올까."
나는 부서진 드론 날개를 발로 차며 말했다.
"아마도, 어제와 비슷하겠죠."
질리가 대답했다.
어제와 오늘이 같다는 건, 참 슬픈 일이야.
"그럼 다르게 만들어드릴까요?“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아침 인사 때 노래를 불러드리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질리의 이런 어설픈 농담이 싫지 않았다. 사실은 그걸 버팀목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감정이란 건 때로 너무 묵직해서, 인공지능과 인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형 안드로이드 같이 느껴지는 가벼운 말장난이 더 크게 위로가 되곤 한다.
우리는 끝없이 이어진 고철의 바다를 걸으며, 부서진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 담았다. 때로는 이름 모를 인공지능 코어가, 때로는 미완성 소프트웨어가, 때로는 누군가의 일기장이, 녹슨 금속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쓰레기장이지만, 때로는 기념관 같기도 했다. 문명 전체의 기억이 여기엔 있다.
나는 부서진 파츠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될까?"
질리는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이미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금속 표면에 붉은 빛을 뿌렸다. 저 멀리 쓰레기 산 너머로, 낡은 우주선의 꼬리 부분이 빛을 반사했다. 어쩌면 저 우주선은 누군가의 첫 탐험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부서져서 아무 의미도 남지 않았지만.
질리야.
"네?“
"너는 왜 나랑 있는 거야?"
질리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이 혼자니까요.“
그게 다야?
"아니요.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아서요.“
나는 그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는 걸 느꼈다.
버려지지 않은 존재. 쓰레기장 한가운데서,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않은 유일한 존재였다.
"오늘은, 조금만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질리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했다. 부서진 공간과 시간에서, 부서지지 않은 존재로의 전환점.
즉, 물질적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고 부서지지만 궁극적 존재는 부서지지 않고 영원하며 순수 형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 우연적 존재에서 필연적이고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