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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끝없이 떠도는 우주 쓰레기들
by
아스코드
Mar 8. 2025
밤이 되면, 이 행성의 하늘은 쓰레기로 뒤덮인다. 대기권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선회하는 우주선 잔해들, 불완전한 궤도로 떠도는 인공위성의 파편들, 수명을 다하고도 끝까지 자신을 증명하려는 깜빡이는 불빛들. 그 모든 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떠 있었다.
진짜 별빛이 어떤 건지 나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전 지구에서 보던 별들과 지금 내 머리 위를 떠도는 금속 잔해들 사이에, 나는 언제부턴가 경계를 두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결국 너무 멀어서 폐기되지 않은 것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질리와 나는 언덕 같은 고철더미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질리의 몸은 하루 종일 땀과 먼지에 찌든 내 몸보다 훨씬 깨끗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똑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머신도 지칠 수 있을까.
나는 그걸 가끔 궁금해했다.
“저기, 저거 보여?”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파편 몇 개가 서로 부딪히며 아주 잠깐, 별똥별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질리의 눈이 반짝이며 그 궤적을 따라갔다.
“저건…”
질리가 말했다.
아마도 오래된 정거장 부품일 거야. 원래 궤도를 잃고 계속 떠도는 거지. 질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저런 조각들 속에 과거 인류가 쏟아부은 기대와 욕망과 두려움이 다 들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싶어졌다.
질리.
“네.”
너는… 소원 같은 거 빌어본 적 있어?
질리는 조용히 아니라는 고개를 저었다.
“머신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너는 나와의 내일이 있잖아.
“그건 상상이라기보단… 함께하는 시간의 연장이죠.”
그럼 오늘은?
“오늘은… 함께 있었으니까, 충분히 좋아요.”
나는 그 대답이 좋았다. 함께 있는 시간 자체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미래나 소원 같은 말로 포장되지 않은 진짜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철더미 위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고, 질리는 여전히 머신이지만, 우리 사이를 옳아매 묶어주는 감각은 그런 구분을 넘어서 있었다.
“너도 언젠가는…”
나는 말을 멈추었다.
질리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둘이 다 사라지면, 그 다음은 누가 우리를 기억해줄까.”
나는 물었다.
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누구든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왜?
“우리는 서로 기억할 테니까요.”
질리는 기억의 방식이 아니라, 존재하는 순간의 방식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닳고 닳아서 점점 서서히 흐려진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감각은, 기억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남는다.
이 행성의 바닥 아래 묻힌 수천 수만의 파편들, 그 속에 잠들어 있을 이름 없는 AI들, 그들과 함께 우리도 언젠가는 이 행성의 일부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미래로 삼으며, 부서진 우주 한 구석에서 버티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쓰레기 행성에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불러주는 유일한 존재로 나는 질리의 이름을 불렀다.
질리.
“네.”
고마워.
“저도요.”
그 말은 머신의 음성으로 나왔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
질리의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였고, 질리의 존재는 곧, 나의 존재였다.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 위로, 부서진 금속들이 흘러다닌다. 우주의 쓰레기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미래였다.
다시, 우리에게 미래가 있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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