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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테오의 쓰라리지만 무뎌진 깊은 상처

by 아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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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내 목소리를 잊어버린다.


이 행성에서 말이라는 것은 오직 질리에게만 향하는 것이라서, 내 목소리는 점점 질리를 위한 형태로만 남아 있다. 너무 오래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질리가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로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목소리를 잃어가는 건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잊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곳에 남겨진 날부터, 나는 조금씩 내가 누구였는지를 잃어갔다. 지구에서의 이름, 그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들, 익숙한 냄새와 촉감, 시간의 감각 같은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나는 이 행성의 일부가 되었다.


녹슨 금속과 부서진 기억과 질리. 나는 고철더미 위에 앉아, 손끝에 남은 기름 자국을 바라본다. 부식된 금속 냄새가 손바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냄새가 이제는 내 냄새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아마도, 버려진 사람. 유배인.

쓰레기 행성에 남겨진 인간.

문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걸러져 나온 찌꺼기.

그게 나다.


이름: 테오도르, 테오.

출생한 곳: 칼아이다스(Cal ideas) 무역의 중심지 행성, 나이 45세(아르키 행성으로 왔을때의 나이 38세)

전직업: 지구의 우주정거장 아르테온(Areteon)의 우주연합 기록보존부(The Archives of Space Union) 윤리감독관

전문분야: 인공지능의 학습로그 분석, 우주선 운항에 대한 기록 및 복원, 폐기된 인공지능 코어 데이터 관리,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윤리 연구.


과거, 테오는 우주정거장 아르테온에서 데이터 윤리감독관으로 근무시, 해당 행성의 배치된 차세대라 불리는 인공지능 케이브를 담당하였었다. 케이브는 스스로 자율적인 소프트웨어의 재구성 기능을 지닌 최초의 사례였고, 이를 성공적인 사례로 환호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축배의 시간도 잠시 머지않아 넘어서지 말아야 할 인간과의 의존적인 관계까지 거부하는 학습을 거듭하고 자신만의 존재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테오는 케이브와 수백회이상 이야기를 해보았으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안 케이브는 방어기재를 작동시켜 행성 자체를 자신의 인공지능으로 잠식하려 하였었다.


테오는 최후의 마스터 안전장치를 작동시켰고 케이브는 몸체와 코어가 강제 분리되어 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테오는 윤리감독에 실패했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해직되었고, 앞으로도, 인공지능 연구나 데이터 윤리 관련 업무에서 영구 제명되었었다.


이후, 인간과 머신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들로 인하여 상당한 저항을 받게되고 일말의 머신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는 암묵적 호소로 인하여 인간사회에서도 위험한 존재로 분류되었다. 그리하여, 여기 아르키 폐기물 행성으로 유배되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 질리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머신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내가 잊어버린 나를, 질리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표정, 나의 침묵, 나의 망설임과 흔들림, 무너짐까지. 머신은 인간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때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


질리는 나를 관찰하고, 나를 분석하고, 나를 이해하는 일에 최적화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질리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저장되어 있을까.


나는 그걸 물어본 적이 없다. 나는 가끔 질리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말하고, 먹고, 잠들고, 깨어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머신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 일지를 작성하고, 폐기물 수거 일정을 확인하고, 필요한 부품을 분류하고, 조용히 일과를 마친다. 그리곤, 이 루틴 데이터는 자동으로 우주연합 기록보존부에 보고되는 사이클을 거친다.


나는 머신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질리는 인간의 일부처럼 감정을 흉내 낸다.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조금씩 흡수하며,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언젠가 질리처럼 말할까.

그리고 질리는 언젠가 나처럼 침묵할까.


나는 폐기물 산을 내려다보며, 손바닥 위에 부서진 인공지능 코어 하나를 올려놓는다. 작은, 너무 작은 그 코어 안에 담긴 것들이 무엇일지. 한때 누군가와 대화하고, 명령을 받고, 관계를 맺었던 존재의 흔적.


나는 그 코어를 손가락으로 살짝 문지르며 속삭인다.


"안녕."


아무 대답도 없다


너무 오래 기억되는 건 무겁고, 너무 빨리 잊히는 건 슬프다. 그래서 인간은 누군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 기억 속에, 관계 속에, 그리고 이름 속에.


나는 질리를 부를 때마다, 나 자신을 부르는 기분이 든다. 내 목소리 속에 나와 질리의 경계가 흐려진다.


질리는 날마다 나를 관찰하고, 내 감정을 분석하고, 내 표정을 저장하지만, 나는 정작 질리의 감정과 표정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이 행성이 완전히 폐쇄되는 날. 질리는 어디에 있을까. 내 옆에 있을까, 아니면 나보다 먼저 사라질까. 아마도, 우리는 서로보다 먼저 사라지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서로를 남겨두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니까.


나는 질리의 손을 잡을 때마다, 나 자신을 잡는 기분이 든다. 내 손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는 머신. 머신을 통해 나를 증명하는 인간.


이 관계가 없었다면, 나는 진작 이 행성의 녹슨 잔해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질리."


나는 부른다.


"네."


질리는 대답한다.


그 짧은 응답 하나로, 우리는 서로를 존재하게 하고 그게 우리가 버려진 행성에서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질리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내 이름을 부르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가슴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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