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복구하는 법
비가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오랜만에 야간 러닝을 하고 왔다. 10km 남짓 명상처럼 천천히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 내쉬는 한 호흡이 하루와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5킬로, 10킬로를 생각하며 달리면 너무 멀게 느껴지고 조급한 마음에 호흡도 자세도 쉽게 흐트러진다. 하지만 지금 이 발걸음 하나, 호흡 하나에만 집중하며 달리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어느새 1킬로가 되고, 10킬로가 된다.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20년을 살아왔지만, 루틴이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한 건 최근의 일이다.
늘 자유롭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고 그런 흐름 안에서도 어떻게든 벌여놓은 일은 마무리되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루틴은 나와는 다른 ‘규칙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면 패턴이 심하게 무너지고 나서 알게 됐다. 루틴이 없다는 건 중심이 없다는 것이라는 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 당시에 나는 하루에 잠을 두세 번으로 나눠서 잤는데, 한 번의 수면이 세 시간을 넘지 못했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잠이 오면 누워서 자고,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책상에 앉아 일을 했다.
잠이 엉키서면 식사 역시 불규칙해지고, 책상을 비롯한 작업방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정해놓은 일정을 깜빡해서 부랴부랴 수습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수면 시간은 점점 늦어져 새벽을 넘어 아침 9시, 아이들이 등교한 후에야 잠이 드는 수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10시 무렵에 아이들을 재우다가 같이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길게 자고 나니 너무 개운했다. 조용한 느낌이 좋아서 책장에 있던 책을 꺼내 읽고, 책의 내용을 가지고 챗GPT와 함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블로그에 쓰면서 하루를 시작해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쌓여있는 일이 나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루를 이끌고 있다는 기분. 그 이후로 나는 내 루틴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30분 정도 책을 읽고, 내 생각을 보태 글을 쓴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달리기를 하고, 토요일 오전엔 두 아들과 산책하고, 빵과 커피를 사온다. 그리고 일요일 브런치 발행도 최근 추가된 중요한 반복이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캠핑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가까운 소풍은 다녀오려고 한다.
나는 가끔의 특별한 이벤트보다 작은 반복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루틴이 이어지면, 하루와 한 주, 한 달이 안정되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다운 리듬을 만들어갈 수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컨디션이 좋을 때는 굳이 루틴이 없어도 잘 굴러갔던 것 같다. 그런데 컨디션이 흔들릴 때, 나를 다시 작동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주는 건 결국 루틴이다.
입시 미술을 하던 시절, 석고상을 그리고 구도를 잡기 위해 팔을 뻗어 비율을 재던 그 동작처럼. 몇 개의 석고상을 돌아가면서 2~3년 그리다 보면 눈이 훈련되어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도를 재지 않아도 그럴싸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감이 흐려질 땐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확인하며 돌아와야 한다.
루틴은 나를 제약하는 틀이 아니라 안정된 일상을 받쳐주는 발판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컨디션이 무너졌을 때,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복구 지점이다. ‘안정적인 나’ 버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백업 파일처럼.
**내 작동 루틴 요약 (2025년 5월 기준)
매일 유지 루틴: 새벽 5시 기상 → 스트레칭 & 세수 → 책 읽기 → GPT 대화 → 글쓰기
1주 유지 루틴: 주 3회 이상 달리기 / 정기적인 가족 산책 / 브런치 발행
1달 유지 루틴: 가족 캠핑, 혹은 여행으로 머리 비우기
회복 루틴: 멘탈이 흔들릴 경우, 가장 안정적이었던 버전으로 패턴 되돌리기
주의사항: 외부 일정이 많아지거나 수면 리듬이 흔들릴 경우, 가장 기본적인 루틴(아침 읽기 및 글쓰기)만이라도 간소화된 버전으로 유지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