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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얀 Oct 29. 2019

우리 집 최고의 갑

[육아툰] 엄마의 사랑 곱하기 76화


남편은 종종 나를 ‘갑’이라 부른다. 월급을 받으면 몽땅 내가 가져가고 자기는 용돈을 받으며 사니 경제권을 가진 아내가 ‘갑’이고 자신은 ‘을’도 ‘정’도 아닌 ‘병’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남편이 편하게 발 펴고 누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소파'다. 마트에 장 보러 갔을 때 먹고 싶은 과자를 카트에 넣으면 뭐 이런 걸 먹냐고 한소리 듣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과자를 먹다 가루가 떨어지면 그릇에 받쳐 먹었어야 되지 않았냐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다. 휴가 때 여행의 목적지와 외식하는 장소 모두 아내가 짜 놓은 스케줄에 따라야 하고 꼬맹이와 관련된 옷과 간식, 장난감을 구매하기 전 아내에게 점검받는다. 아내가 '툭'하고 싸움을 걸어오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짜증 내지 마요.'라는 말 대신 ‘앙탈 부리지 마요.’라고 이야기하고 언어 폭격을 받으면 맞받아치지 않고 ‘또 심심해졌나 봐요.'라고 말한다. 집안일을 미루면 이 세상 최고의 게으름뱅이, 아프면 쓸모없는 남자가 되지만 묵묵히 받아들인다.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횡포’을 적어보니 자신을 '병'이라 부르는 표현이 그럴듯하다. 내 입장에서 '갑 남편의 행동’을 과장되게 묘사하면 내가 ‘병’이 될 수도 있다. 남편을 '갑'이라 부를만한 행동을 찾아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남편 스스로가 서열 중에 최고 아래인 '병'이 되겠다고 자진하기 때문이다. 싸우다가도 먼저 미안하다고 하며 다가온다. '아내에게 져 주면 가정의 평화가 찾아온다.’는게 남편의 철학이다. 그래서 굳이 이기려 들지 않는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갑'과 '갑'의 싸움은 서로 이기려 하므로 답을 도출할 수 없다.

부부는 동급이므로 부부 사이에 위, 아래 서열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서열 아래'가 되어주면 모든 일이 순조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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