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크리에이터의 발상법
식물 세밀화에 관심이 생긴 건 영국 보태니컬 아트 대회(영국 왕립원예협회에서주관)에서 2년 연속 최고상을 받은 식물학 박사과정 신혜우 씨의 기사를 읽은뒤부터였다. 그녀는 작업할 때 현미경부터 챙긴다. 식물을 5~60배로 확대해관찰한 뒤, 0호짜리 세필로 그림을 그린다. 현지에서 캐온 식물을 냉장고 채소칸에 보관하며 상대적으로 빨리 시드는 꽃부터 잎, 줄기 순으로 그려낸다. 꽃이피고 지는 시간에 맞춰 작업 일을 정하고, 꽃의 색칠은 낮 1~2시 사이 자연광아래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그녀는 식물에 대한 정확한 특징을 모르면 그림이왜곡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강조한다.
보통 꽃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가운데 원을 그린 뒤 사방을 두르는 꽃잎 3~5개를 그려 넣는다. 습관적으로 그리는 이러한 형태는 꽃의 본질을 죽이는 셈이다. 꽃의 생김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밀하다.식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내게 도움이 될만한 ‘세밀화 식물도감’관련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식물이 녹조류, 이끼 식물, 종자식물로 분류된다는 것을 몰랐다. 심지어 산딸기와 복분자도 구분하지못했다. 초상화에서도 이목구비가 정확히 표현되어야 누구인지 얼굴을 가늠할수 있는데 식물들은 이름도 모른 채 족보 없는 얼굴로 대략 그려왔다는 사실이 미안할 따름이다.
세밀화는 정확한 표현과 작가의 감각이 회화적 요소로 결합한 예술 작품이며, 사진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그림이다. 세밀화를 통해 식물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세밀화 그리기는 있는 그대로의 형태를 모작함으로써 관찰의 지침을 마련해준다.
수많은 연습이 쌓이면 형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관찰력과 형태 감각이 생긴다. 더욱 노력한다면 형태 표현력이 정확해지고 감정세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즉, 식물 자체를 그대로 베껴내는 단계가 지나면‘예쁘다, 섬세하다, 아름답다’ 등의 감정을 나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그리고싶은 욕구가 생긴다. 식물의 기본형에서 확대와 축소, 과장법 및 생략법 등을사용하여 새로운 형태와 모습을 가진 식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식물 자료는 실물을 보고, 만지고, 느끼는 탐색의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가장 좋다.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틈틈이 찍은 꽃 사진들도 유용한 그림 자료가 된다. 길이나 가까운 풀밭에서 자라는 풀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세밀화 제작을 위해 연필심은 무른 것(2B~8B)보다는 단단한 것(2H~8H)을 사용한다. 섬세하고 가냘픈 선으로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잘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연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연필은 계속해서 깎아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샤프를 이용해도 좋다.
[상상 그 찰나를 그리다] 본문 중...
글.그림 뽀얀